"사흘 만에 녹초가 됐습니다. 주민들의 삶은 그야말로 전쟁이더군요."
제주 해군기지 건설 현장인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만난 인권운동가 류은숙(45ㆍ사진)씨는 지친 표정이었다. 지난 7일 구럼비 해안 발파 강행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제주로 온 류씨는 "새벽 5시면 사이렌 소리가 어둠을 찢는 가운데 주민과 활동가들이 화약 반입을 막기 위해 해군기지 건설 현장으로 나가는 모습이 전쟁터와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 읽기 교과서 '인권의 가치' 항목 집필자인 류씨는 인권연구소 '창'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해군기지가 추진되면서 제주의 평화가 깨지는 것은 물론 인권 상황마저 악화되고 있다는 판단에 제주로 내려왔다"고 말했다.
류씨는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지금 강정마을은 무법천지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이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자 등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인권이 아예 무시되고 있다"며 "무차별 연행을 현장에서 목격한 법률가 동료들은 '법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며 좌절하고 괴로워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 7명이 현장에 왔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아요. 현 정부 출범 이후 인권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진 탓이죠."
'해군기지 찬성 주민들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류씨는 화살을 정부로 돌렸다. 류씨는 "그들은 정부가 내놓은 잘못된 정보에 근거해 오도된 판단을 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찬성 측 주민의 의견도 듣지 않고 모든 것을 무시하며 밀어붙일 뿐"이라며 "토론의 자리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주민들은 모두 피해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류씨는 당분간 강정마을에 체류할 생각이다. 주말에는 생계를 위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서울로 돌아가야 하지만, 주중 닷새 동안은 이곳에 있을 작정이다. "자연과 평화와 인권은 동류의 가치들입니다. 하나가 고장 나면 나머지도 시름시름 앓게 되죠. 자연 파괴가 방치되는 곳에서는 생명의 일부인 사람도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평화 없이는 인권도 없습니다."
서귀포=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