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경험만으로 말한다면, 세상에 가장 힘든 노릇은 부모 노릇이 아닐까 싶다. 옛말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이른 '가지 많은 나무'를 좀처럼 보기 드문 세상인데도, 부모들은 작은 바람에도 너나없이 휘청거리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돌봄의 손길을 한시도 놓을 수 없는 아기 무렵에야, 때 되면 다 하는 걸음마며 "엄마, 아빠, 맘마" 한마디로도 '내 새끼 천재 아닐까' 싶은 경이로움을 안겨주니 심신의 고달픔 따위 견딜 만하다. 본격적으로 부모 속을 긁기 시작하는 초등학생 시절에도, 아직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를 되뇌며 눈 질끈 감을 수 있다. 고입, 대입 경쟁이 현실로 닥쳐 두세 자릿수가 떡 하니 박힌 아이의 성적표를 받고는 '엄친아' '엄친딸' 타령이 절로 나올 무렵이면, 부모의 자리가 더없이 버겁게 느껴진다.
자식 일에 시쳇말로 쿨~ 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마는, 말로는 머리로는 옳고 그른 것 잘 따지고 제 일에는 체념도 잘 하는 이들조차 자식 문제만 앞에 두면 갈피를 못 잡고 자아분열을 거듭한다. 일을 핑계 삼아 아이의 경쟁력 제1 요소라는 '엄마의 정보력'을 일찌감치 포기한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를 테면 이런 경우. 새 학기 고2가 된 딸의 담임이 '밀봉해서 보내달라'며 아이의 생활ㆍ학습 습관이며 건강상태 등을 세세히 묻는 설문지를 보내왔다.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장래 직업 혹은 진학 희망대학(학과)를 묻는 첫 질문부터 딱 막혔다. 나머지 항목들을 먼저 채우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아이의 꿈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짐짓 의식있는 부모인 듯 굴던 나, 괄호 열고 '가능하면 SKY'라고 덧붙이고 만다. 기자로선 사교육 광풍의 폐해를 잘도 지적하던 나, "자기주도학습을 해볼란다"며 학원 다 끊고 들어앉은 아이를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평소 책 읽기와 제 머리로 생각하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던 나, 휴일 내내 소설 나부랭이나 들고 앉았거나 멍하니 창 밖만 내다보고 있는 아이를 보며 뒤 돌아서서 혀를 끌끌 찬다.
이런 인지부조화의 혼란에 빠진 우리 부모들이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꺼내 드는 것이 '세상이 그러니, 남들 다하니 어쩔 수 없다'는 체념조의 말이다. 하나 그 말에는 결국 '내 자식만은…'이라는 지독한 욕심이 도사리고 있음을 부모들 역시 모르지 않는다. 알면서도, 경쟁 부추기는 대입 제도와 입시위주 교육 탓만 해온 것이다.
한국일보는 10일자 'H 커버스토리'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중2병'을 다뤘다. 한창 예민한 시기인 중2 아이들이 고교서열화로 앞당겨진 입시 스트레스에 짓눌려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학교폭력에도 더 쉽게 노출된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자연스런 '성장통'을 가로막는 환경이 문제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눈길이 갔다.
성장통과 더불어 성장 과정에서 제 나름대로 기쁨을 찾을 기회를 앗아버리는 것도 잘못 아닐까. 얼마 전 읽은 소설가 김중혁의 에세이집에서 깊이 공감한 대목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이 자신의 기쁨을 온전하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제공해주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하릴없이 파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마구 뛰어 놀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시절에 발견했던 온전한 기쁨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 어린 시절에 온전한 기쁨을 충전해두지 않는다면 길고 긴 어른으로서의 시간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
책 제목이 인상적이다. . 우리 어른들이, 부모들이, 철없던 시절 갈팡질팡 좌충우돌하면서 지금처럼 뭐라도 되었듯이, 우리의 아이들도 제 몫의 성장통을 앓고 제 나름의 기쁨을 찾으며 자라 뭐라도 될 것이다. 아이들을 옥죄고 아프게 하는 욕심을 조금 줄이고 이런 주문을 외워보자. "뭐라도 되겠지, 될 거야."
이희정 문화부장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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