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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네 번째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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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네 번째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입력
2012.03.11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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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아직도 내게 출가를 권하지만// 출가해 수행자가 되면/ 내게 오는 모든 이를 사랑해야 할 텐데/ 마흔,/ 나는 이제 세상에 이해 못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 그 모두를 사랑할 자신은 없어서/ 편협한 사랑이 용서되는 시인으로 남기로 한다'('마흔'에서)

김선우(42)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창비 발행)를 펴냈다. 새 시집을 묶는 데 걸린 5년 동안 시인은 40대에 접어들었다. 그는 "타고난 성향이 운명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 젊은 날의 시편이라면, 중년의 시는 타고난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며 "숨고르기를 한참 해야 했다. 시를 쓰고 읽는 것이 나와 우리들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시를 통해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오래 고민했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편협한 사랑'을 고수하기로 한 시인. 하여 이번 시집은 이전에 비해 국내외 문제적 현실에 던지는 비판의 메시지가 한층 늘었다. 수많은 이라크 민간인의 죽음을 낳은 미군의 '팔루자 학살'에 분노하는 '축구장 묘지', '2011년을 기억함'이라는 부제를 붙인 표제시 등이 그렇다. '햇빛의 목소리를 엮어 짠 그물을 하늘로 펼쳐 던지는 그대여/ 밤이 더러워지는 것을 바라본 지 너무나 오래되었으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번져온 수많은 눈물방울이/ 그대와 함께 크레인 끝에 앉아서 말라갔다/ (중략)/ 우리는 다만 마음을 다해 당신이 되고자 합니다'('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에서) 이번 시집에 서사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도 현실에 바짝 다가선 시인의 자세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시인은 "동체대비(同體大悲ㆍ남의 고통에 공감하며 자비를 베풂)의 마음이 문학, 특히 시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며 "미적 감성과 사회적 감성의 상호공존은 본래부터 내게 중요한 가치인데, 중년이 되면서 현실 문제가 더욱 적극적으로 문학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아마, 이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의식을 좀 더 강하게 느끼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나는 시가 골방과 광장에서 함께 읽혀지기 원한다"고 말했다.

시인에게 이른바 '에코 페미니즘'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한, 생태에 대한 섬세한 관심을 담은 시편도 여럿. '그런데 이제 취직하고 싶어요/ 생애 최초의 구직 욕망이에요// 바다풀로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발명되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이력서를 쓰고 있어요/ (중략) // 나무들에 대한 진부한 속죄는 말고/ 바다풀 냄새 가득한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요/ 내가 만든 종이로 바다풀 시집을 엮고 싶어요'('바다풀 시집'에서)

김선우 시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빼어난 리듬감일 텐데, 이번 시집은 긴 말줄임표, 글자 크기 변화 등 형식적 변주를 적극 시도해 더욱 리듬감을 살린다. "내가 리듬감을 구현하는 방식은 사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굳이 꼽아보자면 시를 퇴고할 때 수없이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 처음 퇴고할 때는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데, 여러 번 거듭 읽으며 퇴고하다 보면 한 편의 시가 구현되는 내적 리듬이랄까, 그런 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 같다." '금빛 연두의 이 햇빛얼음을 방앗간에 가져가리라 참깨 들깨 짜는 기계 속에 햇빛얼음을 바둑판처럼 잘라 집어넣으리라 흘러내리는 고소한 햇빛 오일을 빈 소주병에 가득 채워 당신 손에 건네리라 마개를 막은 뒤에도 흐르는 오일은 부스스 파꽃 핀 당신 머리칼에 발라주리라'('햇빛 오일'에서)

세 번째 시집 출간 이후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 (2008), <캔들 플라워> 를 발표했던 시인은 올 여름에 낼 세 번째 장편소설의 퇴고 작업에 한창이다. "비극적 사랑과 이별을 겪어내는 두 커플의 연인들이 등장하는, 강에 관한 소설"이라고 한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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