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다 거짓말… 사랑해 널 사랑해' 그룹 JYJ가 'In Heaven'을 부르자 3,000여명의 팬들이 일제히 후렴구를 따라했다. 한국어 발음이 꽤나 정확했다. 관객 중 아시아계는 100명에 한두 명 꼴.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함성은 국내 여느 공연장 이상이었다.
9일 오후(현시시간)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JYJ 콘서트는 남미에서 불고 있는 K팝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이었다. 칠레에서는 물론 남미를 통틀어 한국 가수가 단일팀으로 공연을 한 것은 처음이다.
이날 오후 카우폴리칸 극장 주변 좁은 보도는 공연 몇 시간 전부터 줄을 선 K팝 팬들로 가득 찼다. 10대 초반에서 20대 초반의 메스티소 여성들이 절대 다수인 관객들은 남미인 특유의 순박한 열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인을 유난히 환대하는 이들의 미소에선 지구 반대편의 세계에 대한 동경마저 엿보였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쉴 새 없이 JYJ를 연호하고 '사랑스런 내 남자(mijito rico)'를 외치는 함성은 첫 곡 'Empty'로 시작해 'Ayyy Girl' 'Intoxication' 'Get Out' 등을 거쳐 앙코르 곡까지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칠레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남미 각지에서 온 소녀 팬들의 열기도 녹아 있었다. CNN칠레, 칠레비전, 푸블리메트로 등 현지 언론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카우폴리칸 극장은 비디 아이, 인터폴, 테스터먼트, 머신헤드 등 해외 록밴드들이 자주 콘서트를 여는 곳이다. 일본 밴드로는 디르 앙 그레이, X재팬이 지난해 이 무대에 올랐다.
칠레 언론은 자국 내 열성 K팝 팬들을 2만~3만명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1,600만 인구 전체로 보면 아직 적은 수다. 그런데도 JYJ의 공연이 성황을 이룬 배경에는 칠레 음악문화의 특성이 깔려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12~24세 칠레인의 20%가 석 달에 한 번 꼴로 공연장에 간다고 한다. 한인 교포 라파엘 강(23)씨는 "칠레 젊은이들은 음반을 듣는 것보다 라이브 콘서트를 더 즐긴다"고 귀띔했다.
칠레에는 아직 K팝 음반이 정식으로 발매되지 않았다. K팝의 주 소비자는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이며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해외에서 구입한 음반, 라디오 등을 통해 음악을 듣는다. JYJ의 공연을 보기 위해 칠레의 지방 도시 코피아포에서 왔다는 카를라 카리초(21)씨는 "학교에서 한 반의 절반 정도가 가끔 K팝을 듣는데 그 중 열성 팬은 2, 3명 정도"라고 했다. 조카들과 함께 공연장에 왔다는 기예르모 구티에레즈(32)씨는 "내 또래들은 K팝을 거의 듣지 않는다"고 했다.
칠레 내 K팝의 선두 주자는 JYJ, 빅뱅, 슈퍼주니어, 샤이니, 2NE1, 소녀시대 등이다. 현지 언론은 댄스와 R&B를 섞어 쉽게 친숙해지는 리듬과 선율, 일본의 영향을 받은 비주얼, 화려한 안무를 꼽는다. 남미 청소년들이 일본 애니메이션 등 아시아 문화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자란 점도 하나의 요인. 2000년대 중반에는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부른 일본 아이돌 그룹들이 큰 인기를 끌었으나 현재는 2007년부터 시작된 K팝의 인기에 자리를 내준 상태다. 칠레의 온라인 뉴스 매체 에몰은 "K팝 남성그룹들이 여타 보이밴드들과 음악이 크게 다르진 않지만 독특하고 뚜렷한 동양적 색채를 지니고 있다"면서 "K팝 팬들은 대체로 애니메이션 등 아시아 문화에 매료돼 있으며 충성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라고 진단했다.
남미에서 K팝은 자동차, 전자기기 등의 산업과 함께 한국 문화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JYJ 공연장에는 어깨에 태극기를 그려 넣거나 한국어로 플래카드를 써온 팬들이 적지 않았다. 현지 언론들은 K팝의 확산을 위해서는 팬들과 직접 소통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권했다. 칠레 CNN 기자 스타브로스 모스호스씨는 "K팝 팬들이 아닌 일반인들도 한국 음악을 듣기 시작했으니 앨범 발매와 월드 투어에도 신경 써야 하고 스페인어를 쓰는 팬들을 고려한 소통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티아고=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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