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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 문정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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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 문정현 신부

입력
2012.03.1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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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한창 고운 철로 접어들었다. 동백과 매화가 한창이었고 유채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단 마을 강정에서는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이들과 이를 막으려는 이들 간에 갈등이 몇 년째 계속 되고 있다. 서남해안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이만한 곳이 없다는 해군당국과 12킬로에 이르는 거대한 단일바위 구럼비를 비롯해 할망물을 비롯해 제주의 용수가 돋고 유네스코자연보존지역과 연결된 천혜의 자연을 단지 주민 일부의 동의를 받았다고 파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반대론이 팽팽하다. 작년 6월부터 이곳에 머물며 반대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문정현(71) 신부를 만났다.

_9일 옷은 왜 벗으신 거예요?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고. 강부언이라는 강정 할아버지가 있어. 내 또래지 싶어. 힘은 없고. 구럼비가 발파가 되니까 미치겠던 모양이야. 빤스만 남기고 다 벗더라구. 몸부림을 치는 거야. 동네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막 안더라구. 그 할아버지가 울부짖는데 경찰은 물론 주민들한테도 억압받는 거 같더라구. 그 알몸을 부등켜안고 한참을 울었어. 그래 가지고 벌떡 일어나서 나도 모르게 옷을 벗은 거야. 울면서 벗은 거야. 그 분이 옷을 벗지 않으면 울분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 거야. 그게 나한테 전염이 된 거야. 나 사실 창피해 죽겠어. 그래도 그 현장에 있던 사람은 그걸 이해해."

_강정은 이번 일로 처음 인연을 맺으신 건가요?

"2003년엔가 이라크 파병이 있을 때 전국적으로 유랑을 했지요. 60개 이상의 중소대도시를 다니며 시민단체나 길거리에서 강연하고 없는 실력에 공연도 하고. 그때 강정에도 왔어요. 그때는 화순에 해군기지를 세운다고 할 때인데 화순에서 반대가 심하니까 위미로 갔다가 강정으로 간 거야. 해군이 (전체 주민이 1700명인데) 해녀 87명을 유치찬성하게 하고 마을 사람 전체 의견으로 둔갑을 시켰어. 그때가 2007년이라 또 강정에 왔지. 내가 할 일이 뭔가 보고 갈치장사를 했지. 그 해에 갈치장사가 풍년이었어. 제주공항에서 군산공항 김포공항으로 갈치를 공수해서 성당마다 다니면서 팔았어. 짧은 기간에 1,300만원을 벌어서 (강정 해군기지반대운동) 대책위에 전달했어. 내가 군산 오룡동 성당 주임신부를 하다가 장애인 시설을 만들어서 25년간 원장을 했어요. 그러다가 2009년에 은퇴를 했어. 날아갈 것 같았지. 군산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용산참사가 터진 거야. 어 저거 뭐야, 공권력이 저럴 수 있어? 그래서 용산참사 현장에 가보고 영안실 가보고 유족들 만났지. 그래서 용산에서 11개월 살았지. 그러다 사대강이 터졌잖아. 나 혼자 강정에 관심있다고 활동하면 되는 게 아니라 (정의구현)사제단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는데 사대강 문제로 명동성당에서 단식기도가 시작됐어. 단식기간은 길지 않았는데 명동성당에 있는 동안 한국천주교회의 치부가 드러난 거야. 5월말인데 단식기도 마지막 날이야. 마무리 미사를 하는데 명동성당의 사목회(성당 신자회의) 임원들 10여명이 내려와서 '여기서 미사할 수 없습니다. 신부님들은 각기 본당으로 돌아가십시오. 여기 명동성당은 우리 성당입니다. 여기서 미사를 하려거든 옷을 벗으십시오.' 성모상 앞에 텐트를 쳤더니 서울대교구 관리국장이라는 신부가 와서 '왜 영업방해하느냐'. 군산으로 내려왔는데 아무래도 참을 수가 없어. 강정이고 뭐고 다 잊어버려. 내가 다시 서울 올라와서 아침 8시에 명동성당에 들어갔어. 보좌신부가 나타나더라고. '내가 서울대교구가 사제단에 대해 한 언행을 용납할 수가 없다. 나 이거 때문에 명동성당 날마다 출근하겠다.' 그래서 그날부터 8개월간 아침 8시에 들어가서 저녁 5시40분 미사 끝으로 나왔어요. 그래서 또 강정을 못 왔어. 명동성당에서 오전에는 철저하게 나 혼자 기도하고 명상하고 오후에는 서각을 했어요.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안 만날 수도 없어서 오후에 오라, 그래서 오전에 묵상한 거나 성경구절을 파면서 사람을 만난 거야. 8개월 동안 120개를 팠어. 그런데 그 오후시간에 (영화평론가) 양윤모 선생이 강정마을 대책위 의장하고 와서 강정소식을 전하면서 나한테 와달라고 하는 거야. (명동성당 '1인시위'가) 끝난 게 작년 사순절 지나고 성수요일(4월)이야. 내가 군산에서 평화운동 하는 사람들 셋과 '평화바람'이라는 공동체로 사는데 밥 먹으면서 맨날 강정 이야기를 하지. 식구들이 '신부님, 그러면 강정을 한번 다녀오시라'고. 와서 보니까 너무 참담해. 해군의 일방적인 사업진행에 주민들이 연행되고 소환되고 재판받고 벌금 떨어져서 벌금액수가 수억이야. 하룻밤 자고 군산으로 돌아갔어. 그 말을 했더니 식구들이 '1주일이라도 강정에 있읍시다. 그래서 우리가 뭘 할지 생각을 해봅시다.' 그래서 와보고 또 상단을 꾸려서 전복젓 소라젓 제주산 고등어를 팔아서 5,000만원 이상 벌었지. 그걸로 마을 지원하고 우리 여기 살자 했어. 6월 15일에 세 식구가 집을 얻어서 계속 있는 거야."

_어떻게 지내는 건가요?

"매일 11시에 미사를 지냈어요. 나중에는 제주교구에서 본당마다 돌아가면서 수목금을 맡아주더라고. 나는 또 나머지 미사를 공사장 정문에서 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작년 10월 10일에 전국의 정의평화위원회를 연합해서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 연대'가 떴어요. 그래서 천주교연대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미사를 드려. 2월 22일 대통령 담화에서 강정문제를 거론하더니 강정을 밀어붙이는 거야. 3월 1일부터 엄청난 발파계획이 진행되고 그때부터 매일 싸움이야. 음력설부터 하루에도 수백대씩 레미콘 골재차량이 드나드니까 차 밑에 들어가고. 계속 연행되었다가 나오고. 밤에는 언제 자는지 모르겠고 어떨 때는 한잠도 못 잘 때도 있어. 그제(9일) 신부들 몇을 중심으로 40여명이 담을 부수고 들어갔다가 29명이 연행됐지. 작년 9월부터 구럼비로 가는 길이 막혀 있으니까 카약으로든 수영해서든 담을 넘어서든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매일 싸움이야."

_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건가요?

"무기를 들고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게 교황님 바오로 6세 말씀이고 성서적 가르침이야. 나도 사병을 다녀왔고 가톨릭이 군종신부도 하는데 나는 여호와의 증인이 맞다는 생각이야."

­_국가를 유지하려면 군사기지는 있어야 하잖아요.

"우리나라는 모든 게 안보를 너무 강조해. 그 원인이 뭐냐면 분단이야. 분단해소가 우선이야. 그런데 안보위기를 강조해 정치적으로 이용해먹는 거잖아. 우리나라가 북한보다 군사력이 10배야. 미국까지 감안하면 이건 게임도 안돼. 이건 해군의 탐욕과 위세에 관계되는 거야. 대양해군이니 이거는 붙이는 거고. 촘스키 같은 사람은 이걸 미군기지를 확장하려는 것으로 확신해. 미국 필리핀 제주 오끼나와 하와이 괌. 이런 정책을 반대하는 거지."

_신부님도 미군기지가 된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건가요?

"극우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이 답답하네. 군사력, 중국하고 견딜 수 있어요? 미국하고 견딜 수 있어요? 제주 해안기지를 미국의 전진기지라고 중국이 믿으면 이게 안전기지 되겠어요? 이게 우리 역사의 비운인데 어떻게 해결하냐, 무기로는 안된다. 그럼 뭐냐.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 우리가 여기서 싸우는 것도 그래. 물리적인 힘이 한 점도 안 되는 거야. 호소력은 뭐냐. 우리들의 기도와 비폭력적인 저항이야. 강우일 주교님의 생각도 그거더라고 내가 사제직을 하면서 현직 교구장과 뜻을 맞춰서 하는 것은 처음이야."(웃음)

_신부님이 바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강정을 살려달라?

"강정주민들에게 중덕 앞바다는 400년간 굉장히 중요한 것이야. 6월에 와서 내가 구럼비 바위에서 한 여름을 지냈어요. 중덕사라는 이름으로 비닐천막을 쳐서. 바위가 사람을 끌어. 바위에 발을 디디면 사람을 품어. 아침에 일어나면 여명 운무. 잔잔하면 잔잔한대로 파도가 있으면 파도가 있는대로 하느님을 보는 것 같아. 기도가 절로 나와. 이게 어떻게 나만이 그러겠냐. 바위에 앉아서 바닷물이 들어와서 철렁철렁 진짜 해수욕이야. 몇 발자국 올라가면 용천수가 흘러와 . 할망물이라는 물은 여름 내내 그 많은 사람들이 밥 해먹고 씻고 그래도 끊이질 않아. 이 물이 뭐냐면 임신부가 애기 건강 위해 떠다먹는 물, 제사에 쓰는 물이야. 성스러운 곳이야. 이곳은 민속제당이야. 먼 바다에 풍랑이 왔을 때 예를 올리는 곳이야. 그런데 작년 9월에 펜스치고 공사하면서부터 물이 흐르질 않아. 또 이 자체가 1.2킬로의 통바위야. 폭이 250미터. 이건 아주 유니크해. 중덕앞바다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이야. "

_반대편 사람들은 보존지역이 600미터 떨어져 있다 하던데.

"범섬 주변이라 그게 다 연결돼 있는데 순전히 거짓말로 해. 지형적으로도 항구는 만에 하는 게 정상인데 이건 반도처럼 튀어나와 있는 거야. 그러니까 전부 까야 되는 거야. 구럼비 일대를 구멍을 뚫어서 울타리를 치더니 이번에는 케이슨이라고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바다에 넣었어. 그게 서서히 바다로 가라앉는 건데 이건 한번 놓으면 없애지도 못한대. 그걸 놓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흙탕물이 터져나온 거야. 그 이유를 공개를 한해."

_해적 이야기는 왜 하신 거예요?

"작년 9월 2일부터 행정대명령 내리고. 구럼비로 내려가는 농로 파괴하고. 펜스치고. 송광호씨는 아프간 옰섯霽?난민들 위해 일했던 사람인데 수영도 잘해서 매일 바다쪽으로 들어가서 아침 7시에 기도하고 나왔어. 그랬더니 해군 특수부대가 수중카메라를 뺏어 던져 버리고 집단으로 물을 먹이려고 했어. 해적 이야기도 그래서 나온 거지. 어제 김지윤씨도 만났는데 그 말 잘했다고 했어."

_보수주의자들한테 공격할 빌미를 주었는데.

"그 사람들은 그런 말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공격할 사람이야. 정부는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해. 그런데 마을 전체를 초토화시켜가면서 무슨 안보야. 국책사업을 하자면 주민들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몇 년이 걸리는 거야. 사람들 몇 명 모아놓고 일사천리로 하면 되나."

_서경석씨처럼 민주화 운동하던 이가 반대운동에 나섰는데.

"그런 목사가 꽤 있어. 인명진 권호경 목사, 박홍규 목사. 내가 유신 때 3.1구국선언으로 감옥생활도 하잖아요. 김지하 인혁당 무슨 권리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나. 죽을 각오로 단식도 하고 항의하고. 그 후에 인권운동 반독재운동 하면서 보니까 결국 남북분단이라는 원죄에서 오는 거야. 분단의 원흉이 미군이라는 걸 깨닫고 미군과 불평등에 대한 소파규정을 두고 싸우게 되고 개발이라는 것을 보고 환경문제 두고 싸우게 됐지. 나도 변절의 유혹이 없었던 게 아니야. 김대중 대통령이 3.1구국선언으로 감옥동지잖아. 그 양반이 대통령 됐는데 제의가 없었겠어. 제2건국위원회 위원장 하면 장관급이야. 노무현 대통령이 됐지. 내가 대추리 가서 싸울 때 80년대 운동 같이 했던 사람이 청와대 들어갔는데 집으로 찾아와서 그러는 거야. 남북 문제가 중요하다, 남북농어민 재단 이사장을 해주십시오. 그래서 이 XX…나 자신을 지키는 게 쉽지 않더라구. 그래도 내 기준이 뭐냐.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강도받는 사람들한테 다가가는 사마리아 사람이 되겠다. 성직자로서 당연하다. 그런 삶을 사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잘라내야지."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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