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군기지 구럼비 해안 발파작업 사흘째인 9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선 종일 충돌이 이어졌다. 강정천 부근 공사장 입구에선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측과 경찰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고 연행되는 사람도 속출했다. 해군은 특수부대 보트 등을 동원해 폭약을 실어 날랐고, 해안에선 연신 폭음이 울려 퍼졌다.
이날 오전 9시 30분쯤 문규현 신부 등이 해군기지 사업구역 서쪽 펜스를 절단기로 뚫고 구럼비 해안으로 진입하면서 충돌이 본격화했다. 이들은 펜스에서 1㎞ 정도 달려갔다 건설회사 직원과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경찰은 현장에서 문 신부와 오모(47)씨 등 30여명을 붙잡아 연행했다.
이후 경찰이 체포한 인원을 호송하려 하자 집회를 벌이던 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이 호송차를 막아 3시간여의 대치가 이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연행한 사람들을 서귀포경찰서 등 세 곳으로 분산, 재물 손괴 혐의 등에 대해 조사했다.
해군기지 사업단 정문 앞에선 주민ㆍ활동가 50여명이 농성을 벌이며 연행자 석방을 요구했다. 또 활동가 5명이 강정항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구럼비 해안 진입을 시도하다 해양경찰에 저지당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7월부터 강정마을에 거주해왔다는 인권활동가 조모(39)씨는 "지금껏 구럼비 해안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힌 사람이 30명에 이르지만 무단침입은 벌금 2만원을 부과하는 경범죄에 불과하다"며 "경찰이 수사 편의를 위해 직권을 남용하고 부당하게 공권력을 집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유수면(공공용으로 사용되는 국가 소유의 수면)인 구럼비 해안엔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사업 구역 안으로 들어간 게 설령 불법이라 해도 현장에서 체포될 정도로 무거운 범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오전 11시쯤엔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지지자 10여명과 함께 강정마을을 방문, 강정천 부근에서 '대양해군 건설'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기지건설 찬성 1인 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주민들의 항의로 2분여 만에 철수했다. 제주 해군기지를 두고 '제주 해적기지'라고 비판해 논란을 빚은 '고대녀' 김지윤(28)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도 이날 건설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대표 변연식(56)씨는 "올해 9월 세계자연보전총회를 여는 한국이 어떻게 소중한 자연 유산인 구럼비 해안을 화약으로 파괴할 수 있냐"며 "발파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운동가 류은숙(45)씨는 "평화 없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인권은 없다"며 "군사기지가 강정에 건설되는 순간 평화의 섬이란 제주도의 별칭은 사라진다"고 했다.
해군과 시공업체 측은 이날 오후 3시 24분쯤부터 20여분 간격으로 기지 내 육상 케이슨(방파제 본체용 콘크리트 구조물) 제작 예정지인 강정항 동쪽 100m 부근에서 4차례 화약을 터뜨렸다. 해군 측은 "기지 사업구역에서 벌어진 시위로 발파가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서귀포=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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