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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알아채면 안~돼" 가발회사엔 간판이 없다

입력
2012.03.0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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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정말 20대세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 중인 김영호(27ㆍ가명)씨는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복장이 터진다. 이마를 중심으로 좌우가 깊숙히 들어간 M자형 탈모 때문이다. 친구들은 이마가 넓어 10년은 더 들어 보인다고 한다.

'면접은 인상이 중요하다는데,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가발을 쓰기로 했다. 유명 배우가 TV 광고를 하는 가발회사인 하이모에 전화를 했다. 서울 양재동 대로변에 있는 상담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왜 이리 찾기 힘든가. 간판도 없고, 5층 빌딩 가운데 상담소는 3층이다. 상담소에 들어서니 높다란 칸막이로 구획이 나뉜 대기실이 보인다. 옆에 누가 있는 지 보이지도 않고, 여러 개의 상담실마저 출입구가 제 각각이어서 드나드는 사람을 알 수 없다.

무슨 비밀조직도 아니고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상담을 맡은 황용웅 하이모 과장은 "가발 착용 사실을 감추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 고객들의 비밀을 철저히 보호하기 위한 배려"라고 했다.

상담실에 들어섰더니 이상한 기계가 서 있다. 두상과 탈모 형태를 레이저와 컴퓨터로 측정하는 스캐너다. 의자에 앉았더니 3~5초 가량 기계가 자동으로 회전하며 모니터의 두상과 탈모 상태가 표시됐다.

하이모가 자체 개발해 세계 특허를 갖고 있는 이 스캐너 덕에 한국의 가발 기술력은 세계 최고로 통한다. 일부 업체들이 아직도 따뜻한 촛농 비슷한 재료를 사람의 머리에 씌워 가발 제작을 위한 형태를 측정하는 데 비해 컴퓨터를 사용해 정확도를 높였기 때문. 덕분에 스캐너는 일본 양대 가발업체 중 하나인 아트네처에 150대가 수출됐다. 덩달아 아트네처는 가발제작까지 하이모에 의뢰하고 있다.

두상 측정이 끝나자 김 씨는 상담사와 모니터를 보며 원하는 머리 모양을 골랐다. 긴 머리, 짧은 머리, 곱슬머리, 검정색, 갈색, 금색 등 형태와 색깔을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는 점이 맞춤가발의 장점이다.

"언제 쓸 수 있을까요?"물으니 4주에서 8주를 기다리란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릴까. 황 과장은 "일반인의 머리카락은 평균 5만~7만개"라며 "가발은 3만개 가량의 머리카락을 일일이 손으로 꽂는다"고 말했다. 망사 같은 천에 구멍이 뚫려있고 여기에 고도로 숙련된 여성 기술자들이 특수 바늘로 실제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특수 개발한 인조 머리카락을 하나 하나 꽂아서 묶는다. 당연히 그들은 전문직인 만큼 다른 업종에 비해 고임금이다.

하이모는 이런 방식으로 중국 칭타오, 웨이하이, 홍콩 등 3군데 공장에서 가발을 생산하다. 중국에서 만드는 이유는 저렴한 인건비도 있지만, 머리카락을 살 수 있는 곳이 중국과 인도 밖에 없기 때문. 앞으로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중국인의 식생활이 서구화하면서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푸석푸석해지는 등 상태가 점점 나빠지기 때문.

그래서 인조 머리카락의 개발이 시급하다. 다행히 하이모는 일찌감치 인조 머리카락 개발에 뛰어들어 형상 기억 모발인 '넥사트'를 만들어 특허를 출원했다. 형상 기억 모발이란 빗질 등 사람의 손길이 닿은 대로 모양이 고정되는 인조 머리카락이다. 하이모는 60 대 40의 비율로 사람의 머리카락과 인조 머리카락을 섞는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가발도 탈모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사람의 머리카락은 시간이 지나면 단백질 성분이 변하면서 색이 바래고 삭거나 빠진다. 그래서 사람의 머리카락으로만 100% 가발을 만들 수 없고 인조 머리카락을 반드시 섞어야 한다.

그만큼 인조 머리카락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손으로 만져봤다. 어느 것이 사람의 머리카락이고 어느 것이 인조 머리카락인 지 눈이나 손으로는 구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똑같다. 황 과장은 "전문가들도 구분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제 착용 방식만 정하면 된다. 가발은 착탈식과 고정식이 있다. 착탈식은 일부분만 가려야 할 때 주로 쓰는데 핀이나 양면 테이프로 머리에 고정한다. 혹시 떨어지지 않을까 불안했는데, 눈치를 챘는지 황 과장이 당겨보란다. 그런데 손으로 세게 당겼는데도 꿈쩍하지 않는다. 황 과장은 "하루 지나면 부착력이 약해져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만큼 자주 가발을 벗는 사람들이 선호한다.

고정식은 탈모 범위가 넓고 수영 운동 등 야외 활동 등을 할 때 좋다. 옆부분은 인체에 무해한 특수 약품을 발라 붙이고 앞부분은 양면 테이프로 머리에 고정한다. 고정식의 장점은 주변만 붙이기 때문에 가운데 부분은 시원하게 바람이 통한다. 황 과장은 "고정식도 2~4주에 한 번씩 상담소를 방문해 가발 손질을 받고 다시 붙이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관리는 어떻게 할까. 황 과장의 시범을 보니 간단했다. 착탈식은 2,3일에 한 번 스프레이 형태의 가발 전용 샴푸를 뿌린 뒤 빗어주면 되고, 고정식은 그냥 감으면 된다.

그런데 김 씨는 완전 탈모가 아니어서 실제 머리카락이 자라면 가발과 부자연스러울 것 같아 걱정이다. 황 과장이 옆에 따로 마련된 여러 개의 정리실을 보여준다. 마치 1인용 헤어숍처럼 독방으로 늘어선 정리실은 특수 교육을 받은 미용사 자격증 소지자들이 가발에 맞춰 실제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두피 관리 등도 해준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가발은 보통 90만~200만원인데, 다행히 김 씨는 완전 탈모가 아니어서 부분 가발을 쓰면 돼 100만원 약간 못미쳤다.

그런데 아래 층은 뭐하는 곳일까. 황 과장은 "여성 전용 상담층"이란다. 여자들도 탈모가 있나? 이에 대해 황 과장은 "여자들은 머리 숱이 적은 빈모가 많다"며 "암 환자, 원형 탈모증, 미용을 위한 패션가발 등 여러 용도로 가발을 찾는다"고 강조했다.

황 과장 설명에 따르면 전국 44개 지점을 찾아 가발을 새로 구입하는 사람들이 월 평균 지점 당 40명에 이른다. 동지들이 많다니 다행이다. 김 씨는 새로 도착할 가발을 기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상담소를 나섰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 이수상 하이모 부회장

"여기가 가발회사에요?"

이수상(57) 하이모 부회장은 아직도 30여년 전을 잊지 못한다. 홍익대에서 응용디자인을 전공한 뒤 1979년 우연히 대화물산의 사원 채용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서울 구로공단에 위치한 수출관련 회사여서 광고 디자인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합격하고 보니 여러 업무 중 가발 개발이 그에게 주어졌다.

머리 숱이 많아 가발 쓸 일이 없는 그에게는 아이러니였다. "너무 재미없어 일이 하기 싫었다"는 그는 우연히 외국 여성잡지를 보다가 여자들의 머리 모양을 보고 영감을 얻어 20종의 가발을 디자인했다. 마침 미국 바이어가 방문했다가 이를 보고 무려 1,200개를 한꺼번에 주문했다. 당시 300개 주문을 받으면 성공이던 시절이었다. 사장의 격려를 받고 보니 부쩍 자신감이 생겨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가발 디자인을 했고, 지금 그는 국내에서 최고의 가발 개발자로 통한다.

하이모 창업자인 홍인표 회장은 당시 개발실장이었다. 홍 회장은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1986년 보양산업 개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 부회장을 찾아왔다. "창업을 할 테니 같이 하자"는 제의였다. 이 부회장은 "옮긴 지 한 달 밖에 안됐으니 도의상 이곳에서 5년은 일해야 하지 않겠냐"고 완곡하게 거절했다.

5년 뒤 홍 회장이 다시 찾아왔다. 이 부회장은 결국 1991년 하이모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보양산업도 그를 놓아주지 않아 석 달 동안 두 회사를 오가며 일했다.

하이모에서 제품 개발과 판매를 책임지는 이 부회장은 국내 가발산업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 그가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판매방식의 변화. 일본의 영향으로 골목 어두운 곳에 숨어서 팔던 가발을 길거리 대로변에 상점을 내고 양지로 끌어냈다. 그 대신 모든 판매점을 직영화했다. 그는 "가맹점으로 운영하면 점주가 이익 내기에 급급해 저가 중국산을 끼워 파는 등 문제가 생긴다"며 "직영으로 해야 제품과 서비스 품질이 유지된다"고 말했다. 지금도 이 방침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적인 일본 가발업체들이 찾아와 배울 정도로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하이모가 결정적으로 히트를 친 것은 배우 이덕화가 출연한 가발 사상 최초의 TV광고였다. 당시 이덕화는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TV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밤 업소 출연까지 끊길 만큼 핍박을 받았다고 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덕화는 내키지 않았으나 광고 제의를 수락하면서 TV 출연을 다시 하게 됐고, 하이모 사업도 탄력을 받았다. 이 부회장은 "이덕화씨나 회사 모두 효과를 반신반의했는데 아주 크게 성공했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이덕화씨는 이를 너무 고마워해서 죽을 때까지 광고모델비를 안올리겠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하이모는 지난해 1,4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중 국내 매출은 600억 원, 나머지는 해외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의 수출로 벌었다. 이 부회장은 "한국업체들은 OEM 방식으로 전세계 가발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며 "이제는 자기 브랜드를 가져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하이모는 올해 여성용 패션가발인 하이모레이디 사업을 강화한다. 이 부회장은 "신세계, 롯데, 현대백화점 등이 입점제의를 한 상태"라며 "로드숍도 늘리고 미국에 자체 브랜드 판매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목표는 지난해보다 매출을 8% 가량 늘리는 것. 이 부회장은 "한때 영업이익률이 매출 대비 50%까지 간 적도 있지만 지금은 15% 수준"이라며 "올해 미얀마에 3만평 규모의 공장을 착공해 수출도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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