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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란, 30년전까지는 돈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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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란, 30년전까지는 돈독"

입력
2012.03.0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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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차례 중동전에서 전승을 거둔 이스라엘, 이집트의 퇴조로 중동의 새 맹주로 떠오른 이란. 지금 두 나라는 핵개발을 둘러싸고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30여년 전까지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우방이었다. CNN 방송은 8일 “이란과 이스라엘이 항상 적은 아니었고 수 세기 동안 매우 긍정적인 관계를 맺어 왔다”고 전했다.

유대인(이스라엘)과 페르시아인(이란) 간 우호관계의 시초는 BC 6세기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대왕국 몰락과 함께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BC 597년과 582년 두차례 바빌론으로 추방됐는데(바빌론 유수), 수십년 후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려 보내준 이가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2세다. 다시 고향에서 쫓겨나 방랑(디아스포라)하던 유대인들이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한 뒤에도 이란과의 좋은 관계는 계속됐다. 친미 성향인 이란 팔레비왕은 이스라엘에 원유를 수출해 달러를 벌었고, 아랍과 대립하던 이스라엘 역시 이란이 비아랍(페르시아) 국가인 점 때문에 전략적 제휴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79년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몰락한 다음에도 긴장이 감돌긴 했으나 은밀한 협력은 끊이지 않았다. 이란-이라크 전쟁(80~88년)에서 사담 후세인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이스라엘은 비밀리에 이란에 무기를 제공했고, 81년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를 공습해 결과적으로 이란을 도와주기도 했다.

관계가 틀어지지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부터다. 이란이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지원하자 이스라엘은 이란을 테러지원국으로 간주했고, 이란은 이스라엘 공격을 염두에 두며 핵개발을 시작했다. 이란이 핵에 손을 대면서 양국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적이었던 때보다 친구였던 기간이 훨씬 오래고 여전히 수만명의 유대인이 이란에서 활동 중이지만, 관계가 회복될 여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키루스 2세를 높이 평가하던 이스라엘은 이제 BC 5세기 유대인을 절멸시키는 음모를 꾸몄던 페르시아의 재상 하만을 먼저 떠올린다. 7일은 하만의 음모가 발각돼 유대인들이 풀려난 날을 기념하는 부림절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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