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6자회담 남북 수석대표의 뉴욕 회동이 실패로 끝났다. 이를 두고 북한과 미국의 대화 움직임에서 소외된 한국 정부가 다급한 마음에 무리수를 두다가 굴욕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국 대표단은 8일(현지시간) 미국 시라큐스대 행정대학원 맥스웰스쿨과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공동주최로 뉴욕에서 열린 한반도 관련 세미나에서 남북대화를 포기했다. 외견상으로는 북한이 양자 접촉에 응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실제로는 초대받지 않은 세미나에 나가 대화를 시도하다 거절당한 것이다. 한국 대표단은 세미나에서 피하는 북측과 만나기 위해 이틀을 쫓아다녔다.
다수의 참가자들에 따르면 한국 외교는 이번 세미나에서 굴욕과 망신을 당했다. 리용호 외무성 부상 등 북한 대표단은 기념사진 촬영 때 한국 측과 같은 자리에 서지 않으려 했다. 세미나에서 한국 대표단이 옆에 앉는 것조차 안 된다고 했다. 남측 대표단 자리를 북측 옆에 배치하려다가 작은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성남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리용호 부상과 몇 차례 대면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한국 측은 준비해 간 ‘이야기’들을 꺼낼 기회도 잡지 못했다. 이런 모습을 거의 모든 참가자가 지켜봤다. 결국 한국 대표단은 더 이상 대화가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 참가자와 외교관의 입에서 “창피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참가자들은 한국 정부가 대표단 파견을 결정한 배경이 통미봉남의 우려 때문이라고 전했다. 한국 정부는 북한과 미국이 베이징에 이어 뉴욕 한복판에서 관계 개선을 이어갈 경우 한국 내 여론이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처음부터 의식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최 측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리용호 부상의 참가를 막기 위해 미국에 리 부상의 비자 발급 보류를 요청했다. 그러나 북미대화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비자 발급이 결정되자 부랴부랴 옵서버로, 다시 정식 참가자 자격으로 세미나에 초청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 대표단은 원래 초청 대상이 아니었다. 민간차원(트랙2) 세미나에 정부 대표단을 파견한 국가는 8개 참가국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다. 리용호 부상도 군축평화연구소 자문역이란 민간 신분으로 참가했다. 한국 대표단은 뉴욕 도착 전까지 북측이 대화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이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세미나 관계자는 “북한이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한국 참가를 양해했을 뿐, 대화 의지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전했다.
외교부는 원래 세미나에 참가하지 않으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참가자는 “대표단 파견이 외교부가 아닌 정권의 결정이었던 것으로 안다”며 “잘못된 판단 때문에 유능한 외교관들이 망신을 당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런 현실은 이명박 정부 외교의 실패이자 한계”라며 청와대 관계자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굴욕적 외교사태는 심각한 부작용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약점을 잡혔고 미국에는 한국 외교가 우습게 보이게 됐다. 세미나에 참가한 8개국 동아시아 전문가들에게 한국 외교가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날 세미나에서 리용호 부상은 “미국과 관계가 개선되면 핵 문제는 해결된다”고 말했다. ‘선(先) 북미관계 해결 후(後) 북핵 해결’이란 새 협상방식을 공개 천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뉴욕=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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