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마,씨/강정 지음·허남준 사진/문학동네 발행·312쪽·1만4,500원
"한 편의 시가 강정이라는 몸을 통과해 한 편의 산문이 되고 있는 작은 신비"라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씨의 표사는 이 책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시인 강정(42)씨는 김경주 김근 김소연 김언 김중 김태동 신동옥 이영주 이원 이준규 정영 조연호 최하연 하재연 등 시인 14명의 시 한 편씩을 불러 놓고 시구 하나씩을 자신의 문장 속으로 끌어들이며 사유를 펼친다. 일테면 김경주의 '기담' 속 한 구절은, "한 사람을 생산해냈던 태내는 이미 그 공정 과정이 화석화되어버린 채 한 여인의 음부 안에서 영원의 걸쇠로 봉인돼 있다. 그러나, 그곳으로 돌아가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또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태어나고 나서야/ 다시 꾸게 되는 태몽' 하나 정도쯤 누구나 가지게 마련이다"(24쪽)라는 문장으로 체화된다.
시구들의 의미와 맥락을 섬세하게 살핀다는 점에서 얼마간 시 해설로 읽히는 이 책은 이를 발판으로 작가 강씨의 고유한 사유를 함축적 문장으로 전개한다는 점에서 매우 시적인 에세이이기도 하다. 예컨대 아이가 잠들기 전 엄마가 귓속말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 빛나는 신화로 거듭나는 장면. "엄마는 아기가 꾸다 만 꿈속으로 가는 길을 매일 밤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를 몸 밖으로 빼내는 순간부터 아이의 꿈을 자신의 몸 안에 가둬버렸다."(35쪽)
화가ㆍ뮤지션인 허남준씨의 사진과 맞물린 14편의 짧은 에세이는 콤마씨(Comma氏)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그의 사유와 행적을 좇는 형식을 취한다. 그는 "문장 한가운데 붙어 전후의 맥락과 숨을 고르는 우주의 작은 반점", 그러니까 문장 속 콤마(쉼표)와 같은 역할을 존재와 우주의 차원에서 수행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시인(시인 일반이면서 강정 시인 자신이기도 한)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이 책은 시론(詩論)이기도 하다. 강정ㆍ허남준 2인 밴드 'THE ASK'의 앨범(5곡 수록)이 부록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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