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MBC.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두 공영방송사가 흔들거리고 있다. 기자들, PD들이 노트북과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뉴스시간이 반토막나고 국민드라마가 결방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무엇 때문이며 누구 때문인가.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뉴스를 다시 볼 수 있는가. 언제야 '무한도전'을 다시 볼 수 있는가.
한국의 방송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한다. 김인규, 김재철 두 사장은 사퇴해야 한다.
두 사장은 30년 이상 언론인으로 살아오면서 우리나라 언론과 방송에 대한 애정을 쌓아왔을 것이다. 지금 자리에 오르기까지 쏟은 열정이나 전문성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물론 재물과 권력에 대한 욕심이 앞선 순간도 있었을테고, 언론인의 사명과 책임에 대해 잠시 오해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 잠시였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일선 기자와 PD들이 일터를 박차버린 지금은 우리나라 언론과 방송에 대한 30년간의 애정과 책임감을 새롭게 되새길 때다.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그 애정과 책임감을 드러내야 할 때다.
사기업인 신문이 정파성을 드러내고 민영방송이 정치권력이나 자본에 영향을 받을 때, 공영방송은 균형을 지키며 '공익'을 추구해야 한다. 권력을 감시하고 목소리 작은 보통사람들을 대변해야 한다. 김인규, 김재철 사장의 공영방송은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4대강 등 현 정부 정책에 대한 탐사보도를 막았고, 내곡동 사저 사건을 슬그머니 묻었다. 두 방송사 보도에 대한 크고 작은 불만들을 모두 나열할 필요는 없겠다. 두 방송사가 마땅히 해야 할 파수견의 역할이 언젠가부터 '나꼼수'나 '뉴스타파', 혹은 소셜미디어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족하다. 오해하지 마시라. 이것은 정치적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저널리즘의 문제다.
KBS 새 노조는 89%의 찬성으로 총파업을 가결시켰다. MBC 노조는 이미 한 달 이상 총파업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임금 인상을 원하는 것도 근무조건 개선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시청자들에게 욕먹기 싫고, 제대로 된 방송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사측은 기자와 PD들이 정치적 파업을 한다고 비난한다. 과연 누가 정치적인가. 야당의 미공개회의를 불법도청했다는 의혹에 대해 떳떳한 해명도 진솔한 사과도 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정치적이다. 전임 사장의 해임이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아무런 공식 반응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 그 사실을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정치적이다. 권력에 비판적인 발언을 했던 진행자들을 자르고, 자사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무죄 확정판결을 받자마자 오히려 사과방송을 내보낸 것이 정치적이다. 무엇보다도, 지역구 관리한다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꿋꿋한 고향 사랑을 보여준 것 만한 정치적 행위는 찾기 어렵다.
현장을 누비는 자사 기자들의 절대 다수가 거부하는 사장이라면 더 이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노조위원장을 해고하고 50억 손해배상 청구하고 계약직 기자 뽑아 구멍 메워나가겠다는 꼼수를 부리는 사장을 어떤 사원이 존경하고 따를 수 있겠는가. 언론인 학살을 자행했던 70년대 박정희 정권과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로 되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나마의 명분이 남아있는 지금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옳다. 그것이 KBS와 MBC가 사는 길이고 한국의 방송이 다시 생명을 되찾는 방법이다.
세계가 평가한 우리나라의 언론자유도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대통령 특보 출신과 "청와대에 불려가 쪼인트를 까였다"는 사람이 두 공영방송의 사장이 되었을 때 이미 우려했던 일이기도 했다. 사장 한 명 바뀐다고 하루아침에 우리나라 언론 지형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위기의 극복은 두 사람의 사퇴로 시작되어야 한다. KBS와 MBC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나 당연한) 공정보도를 하겠다며 싸우는 연합뉴스와 YTN이 있고, 미래정치권력과 싸우는 부산일보, 종교권력과 싸우는 국민일보가 있기 때문이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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