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판사, 부장검사와 기자가 줄줄이 피고소인과 참고인으로 걸려 있는 사건이 있다. 바로 ‘나는 꼼수다’의 폭로로 불거진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과 김재호 부장판사 부부의 기소청탁 의혹 사건이다. 오랜만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사안을 수사 중인 경찰이 활기를 띨 만도 하건만, 속내가 편해 보이지 않는다. 경찰 내부에서는 “과연 우리가 제대로 수사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자성이 나오기까지 한다.
아마도 경찰은 물론 국민들이 지켜봤던 이번 사건의 몇몇 장면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박은정 검사의 진술서를 받으러 검찰로 가는 경찰의 모습이다. 박 검사는 경찰이 자신을 참고인으로 조사할 조짐이 보이자 자발적으로 서면진술서를 냈다. 그런데 수사 중인 경찰이 아닌 수사지휘 기관, 즉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인 검찰에 냈다. 검찰은 경찰에 “박 검사의 진술서를 받아가라”고 지시했고, 경찰은 그렇게 ‘모셔온’ 진술서의 내용에 대해 입을 꾹 다물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현직 검사가 참고인으로 경찰에 출석해 조사 받은 전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지레 자기합리화하는 듯한 말을 했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말에는 또 다른 참고인인 김 판사에게도 진술서를 요구해 우편으로 제출받았다. 경찰은 이 사실 자체를 비공개에 부쳤다. 일반 국민들은 참고인 신분이라 하더라도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다. 아니, 그래야 하는 줄 안다. 경찰도 최대한 참고인의 편의를 봐주며 출석 조사를 유도한다. 서면 조사는 답변이 불충분할 경우 재질문 하기가 쉽지 않은 등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경찰 앞에는 또 새로운 수사 대상이 생겼다. 박 검사가 김 판사의 기소청탁 전화 내용을 전달했다고 밝힌 최영운 부장검사다. 최 검사는 나 전 의원 측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네티즌을 실제 기소했다. 그에게서 들어야 할 진술이 만만찮다. 경찰은 그런데 최 검사에 대해서도 출석 조사가 아닌 서면 조사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지난 1월 주진우 시사인 기자로부터 고소 당한 김 판사는 참고인에서 피고소인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박 검사나 최 검사 등 참고인들의 진술에 따라서는 피의자가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2자 대면 또는 3자 대면 조사 필요성까지 제기된다.
검사의 진술서를 알아서 ‘모셔’ 가고, 추가 조사가 필요한데도 서면 조사로 편의를 봐주는 경찰. 현직 부장판사와 부장검사를 제대로 수사해 의혹과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까. 과연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한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김지은 사회부 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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