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 망명을 시도한 왕리쥔(王立軍) 충칭(重慶)시 부시장을 '조국과 당에 대한 반역자'로 낙인 찍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중국 지도부가 왕리쥔 사건의 성격을 반역사건으로 강경하게 규정한 것이다. 후 주석이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을 이끌어 온 반면 왕 부시장은 고위 관료 자녀 출신인 태자당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당 서기의 오른팔이었다는 점에서 공청단이 대규모 숙청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7일 정부 소식통을 인용, 후 주석이 3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11기 5차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에서 정협 대표들과 내부 회의를 갖고 "왕 부시장은 반역자"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SCMP는 또 충칭시의 한 소식통이 "현(縣) 이상의 충칭시 간부들은 4일 왕 부시장이 조국을 배신했다는 얘길 들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보 서기의 측근으로 '범죄와의 전쟁' 과정에서 '치안 영웅'으로 부각된 왕 부시장은 지난달 6일 갑자기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의 미국 영사관을 찾아가 망명을 시도, 파문을 일으켰다. 왕 부시장은 대사관으로 찾아 온 황치판(黃奇帆) 충칭시장과 면담한 뒤 영사관에서 나왔으나 곧바로 국가안전부(우리의 국가정보원에 해당)로 끌려갔다. 황 시장도 5일 이러한 사실을 공식 확인한 뒤 "만약 왕 부시장이 미국 영사관에 더 오래 머물렀다면 외교적 위기가 올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왕 부시장은 그 동안 부패 및 도덕적 타락과 관련한 혐의에 연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 정치 분석가는 "중앙 지도부가 왕 부시장을 '반역자'로 몰아붙인 것은 충칭시의 고위 당 간부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왕 부시장이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반역죄로 기소될 경우 개인의 문제로 국한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보 서기가 치명적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베이징 정가에선 보 서기가 10월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될 가능성은 희박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일각에선 10월 정권을 잡을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도 보 서기와 같은 태자당이라는 점에서 신구 지도부간 권력 투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조심스레 예상하고 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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