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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구럼비 바위 발파/ 쇠사슬 묶인 채 끌려가고 배 뒤집히고…그러나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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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구럼비 바위 발파/ 쇠사슬 묶인 채 끌려가고 배 뒤집히고…그러나 막지 못했다

입력
2012.03.0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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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새벽 3시20분. 제주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적막을 깨고 비상 상황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스피커에서는 "긴급 상황입니다. 지금 경찰 병력이 강정마을로 향하고 있으니 주민 여러분은 차량을 갖고 빨리 나와 주십시오"라는 내용이 계속 흘러나왔다.

마을 주민과 시민활동가 등 100여명은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으로 속속 집결했다. 이들은 구럼비 바위 폭파를 위한 화약 반입을 저지하기 위해 차량 10여 대를 동원, 공사 현장으로 통하는 해군제주기지사업단 부근의 강정천 다리와 주변 도로를 봉쇄했다.

일부는 쇠사슬로 서로 몸을 묶고 연좌 농성을 벌였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온 몸으로 막을 것이다. 구럼비를 파괴하는 것은 강정마을은 물론 제주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전 7시 경찰은 600여명의 병력을 투입해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한 작전에 들어갔다. 20여분 만에 연좌 농성하던 시위대는 진압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주민 간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여성 활동가 1명이 실신하기도 했다. 곳곳에서 울부짖음과 외마디 비명, 탄식이 쏟아졌다. 한 주민은 "구럼비를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하며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현애자 전 국회의원을 비롯한 주민과 시민활동가 등 15명을 연행했다. 앞서 새벽 4시쯤 문정현 신부와 시민활동가, 주민 등 20여 명은 해군이 쳐놓은 펜스를 넘어 구럼비 해안으로 들어갔다가 일부가 연행되기도 했다.

경찰은 병력을 투입한 지 2시간여 만에 강정마을을 장악했으며, 결국 오전 11시20분쯤 구럼비 해안에서 첫 발파 작업이 강행됐다. 첫 발파로부터 20분쯤이 지나 시민활동가들이 발파에 항의하며 카약을 타고 구럼비 해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다 가로막는 해경 보트와 충돌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카약에 타고 있던 활동가 2명은 구조됐다.

우근민 제주도지사와 오충진 제주도의회 의장은 발파 작업 직후 대 국민 호소문을 발표, "중앙정부에 명분 있는 국가이익과 아름다운 제주 발전을 원하는 모든 국민과 뜻을 모아 간곡하게 호소한다"며 "물리적 충돌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공사를 일시 멈춰달라"고 요구했다. 민주통합당 정동영 의원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등 정치권 인사들은 이날 강정마을을 방문해 "정부와 국방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며 "구럼비 발파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천주교 제주교구 사제단은 이날 오전 10시 제주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국방부가 각계 각층의 간절한 호소에도 대량의 폭약을 집어넣어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려는 것은 국민을 짓밟겠다는 극악무도한 범죄행위와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사제단은 "평화와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려는 기도를 좌시하지 않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에서도 진보 단체들로 구성된 '제주 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가 이날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강행을 규탄했다. 비상시국회의는 "아무런 명분이 없음에도 이명박 대통령과 총리실은 공사를 강행했다"며 "구럼비 발파 작업을 즉각 중단하고 제주 해군기지 공사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모인 시민 300여명도 이날 밤 서울 청계광장에서 구럼비 해안 발파작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가졌다.

서귀포=정재환기자 jungj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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