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18대 총선 영남 지역 공천자 51명의 명단이 발표된 2008년 3월 13일. 당시 친박계 좌장이었던 김무성 의원과 박종근 이해봉 김태환 유기준 이인기 김재원 의원 등 친박계 핵심 의원 10여명이 우수수 낙천했다. 친박계는 '친이계가 공천 학살을 저질렀다'며 분루를 삼켰다.
19대 총선의 2차 공천자가 결정된 5일엔 상황이 역전됐다. 수도권과 영남, 충청 지역 등의 현역 의원 탈락자 32명 중 친이계가 20여명(비례대표 3명 포함)에 이르렀고, 청와대 출신 인사는 거의 전멸했다. 이에 친이계는 '친박계의 보복 학살'이라고 소리를 높였다.
친이계와 친박계가 상대방을 '공천 학살 가해자'로 몰아붙이는 상황은 유사하다. 하지만 4년 전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다른 점도 일부 있다. 우선 18대 공천은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직후, 즉 청와대와 친이계의 '힘'이 가장 셀 때 이뤄졌다. 당시 친이계 핵심 인사 몇 명이 공천을 주도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청와대도 적잖은 입김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엔 '친이계가 당을 명실상부한 '이명박당'으로 만들어 국정 추진력을 얻기 위해 친박계를 대폭 정리할 것'이라는 설이 무성했다. 공천 완료 당시 생존한 친박계 의원은 20여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정권 말기에 접어든 데다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한 지금은 청와대와 친이계가 공천에 대해 목소리를 낼 공간이 거의 없어졌다. 당 주류가 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친박계는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오히려 당에서 '이 대통령의 색깔'을 지우고 '박근혜당'으로 바꿔야 할 입장이 됐다. 한 당직자는 "친이계 의원과 청와대 출신 인사들을 대거 배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에는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을 공천해 외견상 '화합'의 모양새를 갖추려 한 게 다르다. 단수후보 지역과 전략공천 지역을 합해 137곳의 공천자가 결정된 6일 현재 살아 남은 친이계 의원은 20여명으로, 공천이 끝나면 최종 생존자는 이보다 다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4년 전에는 친이계가 의원들의 당락을 사실상 좌지우지한 '기획 공천'이었다면 이번엔 여론조사 공천"이라며 "18대 총선 때 수도권에서 '명박돌이'(이 대통령의 높은 인기 덕분에 당선된 의원)들이 많이 나왔는데, 대통령 지지도가 떨어지자 그들의 경쟁력도 하락하면서 당연히 낙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친이계 의원들은 '2004년 공천 심사 때는 친박계 인사가 공천위에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친이계 인사가 공천위에서 완전 배제됐다"고 반박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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