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연극계의 공휴일이다. 주말 대목의 공연을 치르고 월요일 쉬는 극장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월요일이던 5일 오후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은 마치 공연 날처럼 북적거렸다. 객석에는 연출가, 극작가, 안무가, 배우 등 공연예술 종사자를 비롯해 60여명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1일부터 공연을 시작한 연극 '3월의 눈' 무대장치인 한옥에 조명이 환하게 들어와 있다.
무대에 선 주인공은 배우가 아닌 철학자 이정우 경희사이버대 교수. 국립극단의 연극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 '월요일 오후 다섯 시'의 첫 강연에 나선 이씨는 이날 '들뢰즈 시간론 입문' 강의로 2시간 무대를 채웠다.
최근 국내 연극인들이 인문학, 문학과의 접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사회의 변모를 좀더 거시적이고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는 극장이 생겨나고, 다양한 관점으로 스토리를 재해석할 수 있는 소설을 무대에 올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스타 캐스팅 같은 화제만 넘쳐났지 논쟁과 사색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에 대한 고민은 온데간데 없어진 국내 연극계의 현실에 대한 반성이자 연극인 재충전의 기회이기도 하다.
인문학 강좌는 올해 국립극단의 주요 사업 중 하나로 7, 8월을 제외하고 공연이 없는 매주 월요일 열린다. 3월은 이 교수가 총 4회에 걸쳐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 강해(講解)에 나선다. 동양철학자 강신주씨와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의 슬라보예 지젝 강의 등도 준비하고 있다. 국립극단 홈페이지(www.ntck.or.kr)나 이메일(haeju@ntck.or.kr)로 예약하면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연극계를 살찌우기 위해 철학적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며 "그간 연극인들의 인문학에 대한 갈증이 컸는지 학술적임에도 불구하고 첫 강연의 참여도가 기대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강연을 들은 연극인들은 만족해하는 분위기가 눈에 보인다. 극작가 겸 평론가인 김명화씨는 "강의를 들으니 예전에 시간을 주제로 썼던 작품의 부족한 점이 보이더라"며 "이를 보완해 다시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무대 디자이너인 윤정섭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시간과 공간이 주요 재료인 나의 생각을 명확하게 하고 확장시켜 준 자리였다"고 말했다. 강의를 맡은 이 교수는 "조명을 받으며 연극 무대에 선데다 수강 분위기가 드물게 진지했다"며 자못 흐뭇해했다.
요즘 국내 공연계는 배우가 무대에서 희곡이 아닌 소설을 읽어 주는 낭독 공연이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무대장치나 극적인 기법 없이 오로지 텍스트만을 통해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찾는 이런 공연에 관객은 물론 연극인의 호응이 그저 그만이다.
2009년부터 연극배우가 고 박완서씨의 단편소설을 낭독하는 '박완서 배우가 다시 읽다'를 무대에 올려 온 선돌극장의 손기호 대표는 "작가가 다층 구조로 심어놓은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 희곡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까닭에 연극인들의 관람이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시리즈의 하나인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낭독 공연 연출을 맡고 있고 8일부터 산울림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을 기획한 성기웅씨는 "희곡에 비해 관객에게 해석의 가능성을 더 열어준다는 점에서 창작자로서도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도 꾸준히 낭독 공연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더 활발한 연극과 문학계의 교류도 도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