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한달여 뒤 간 나오토(菅直人) 전 일본 총리는 원전 인근 주민들에게 긴급대피를 지시하면서 "하루빨리 주민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남쪽으로 21㎞ 떨어진 히로노마치(広野町)를 방사성 물질 오염제거 시범지역으로 지정, 집중적인 오염제거작업에 나섰다. 사고 6개월만에 일본 정부는 주민들이 복구해도 좋다고 선언했고, 5,200여 주민 중 250여명이 마을로 돌아왔다. 1일에는 한국의 읍사무소에 해당하는 야쿠바(役場)의 업무도 재개했다.
기자가 히로노마치 야쿠바를 찾은 것은 업무 재개가 이뤄진 다음날인 2일 오후였다. 청사 입구에 들어서자 방사능 수치를 알려주는 전광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간당 0.012마이크로시버트(μ㏜)로 도쿄(東京)보다 약간 높지만 법적 기준치 이하인 정상수치였다.
청사 내부는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짐 정리로 분주했지만, 정작 민원인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민원실 직원은 "1일 하루 동안 민원인 10명 정도가 찾았다"며 "그나마 이 곳에서 복구 일을 하는 관련 회사 직원들이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교육위원회도 업무를 시작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한 개씩 있는 이 마을의 학생은 500명이 넘는다. 하지만 현재 마을에 거주하는 학생은 단 한명도 없다. 아시카와 도시유키(芦川鋭章) 교육장은 "오염제거 작업은 이제 시작"이라며 "2학기가 시작되는 8월에 정상 수업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관청에서 100m 떨어진 히로노마치 초등학교에는 학생들을 맞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학교 운동장의 흙을 수십㎝ 걷어내고 오염되지 않은 흙을 다시 깔았다. 건물 전체에 고압 살수차를 동원, 오염물질을 씻어냈다. 학교 건물도 벽면 페인트칠과 조명공사 등으로 분주했다.
하지만 새 단장한 학교에 학생들이 돌아올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아시카와 교육장은 "학생이 단 한명이라도 복귀한다면 정상수업을 하겠다"면서도 "학교가 정상화하는데 몇 년이 걸릴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은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했지만, 히로노마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사에서 철도역으로 이어지는 도로 곳곳에는 도호쿠 대지진 당시 파손된 흔적이 남아있었다. 청사를 주변으로 반경 수백m 일대는 오염제거작업이 마무리됐지만, 조금만 벗어나도 여전히 많은 양의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고 있다. 청사 내에 붙어있는 오염작업 현황을 보면 기준치의 30배가 넘는 오염물질이 측정되는 주거지역도 있다.
피난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10월 마을에 복귀했다는 주민은 마스크 등 별다른 장비를 갖추지 않은 기자를 보더니 대뜸 "아직도 마을 야산에는 기준치의 수백배에 달하는 오염지역이 적지 않다"며 "오염 제거가 완료된 길이 아닌 곳은 절대 돌아다니지 말라"고 당부했다.
일부 주민들이 돌아왔지만 히로노마치는 정상적인 마을로서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있다. 편의점과 몇몇 식료품 가게는 문을 열었다. 그러나 대부분 이와키시의 가설주택에서 출퇴근하기 때문에 밤이 되면 모두 문을 닫는다. 대다수 관청직원들도 이와키시로 둥지를 옮긴 터여서 저녁이 되면 통근 버스나 자가용으로 마을을 떠난다.
밤에 빈집을 노린 도둑들도 기승을 부려 외출하기도 쉽지 않다. 한 경찰관은 "순찰차가 24시간 돌고 있지만, 도둑을 잡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며 "인명피해가 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말했다.
히로노마치=글ㆍ사진 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 "복구 10년 더 걸려" 78% 6개월 이전보다 비관적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나미에마치, 이다테무라, 가쓰라오무라, 도미오카초 등 후쿠시마 관내 10개 지자체 주민들이 타지로 피난했다. 9개 지자체 관공서도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다. 이중 히로노마치 야쿠바가 1일 가장 먼저 업무를 복귀했고, 26일에는 가와우치초 야쿠바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예정이다. 미나미소마시에서는 지난달 27일 초등학교와 중학교 4곳이 수업을 재개했다. 일본 정부와 주민들의 필사적인 오염제거 노력으로 이 지역의 방사능 오염농도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라는게 해당 지자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다르다. 6일 아사히(朝日)신문이 제1원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민 10명중 9명은 복구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8명은 예전으로 돌아가려면 10년은 더 걸릴 것으로 답했다. 복구의 전망이 어느 정도 보인다는 응답은 7%에 불과했다.
예전처럼 살 수 있는 시기가 언제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1%만이 3년 이내라고 했고, 5년 이내 4%, 10년 이내 13%였다. 복귀시기를 10년 이후로 응답한 주민은 78%로 6개월 전의 68%보다 늘었다.
주민의 80%는 원전사고 이후 후쿠시마에 거주하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 이중에는 방사성 물질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심했다. 주민 32%는 지금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떠나고 싶다고 답했다.
급격한 인구감소도 예상된다. 데구치 교코(出口恭子) 정책연구대 교수는 2010년 인구를 100으로 봤을 때 후쿠시마 인구는 2040년 50.8로 절반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후쿠시마는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높아 인구감소폭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다"며 "더욱이 원전사고로 타 지역으로의 전출인구가 늘면서 심각한 공동화 현상이 빚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 "칠십 평생 살아온 고향이지만 절대 안 돌아가"
"늙은이의 건강은 아무래도 좋다는 말이요?"
3일 히로노마치 주민들의 집단 피난지역이 조성돼 있는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주오다이(中央台)에서 만난 스즈키 요코(鈴木陽子ㆍ78)씨는 "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버럭 화를 냈다.
스즈키씨가 히로노마치를 등진 것은 지난해 3월16일. 후쿠시마 제1원전 1~3호기에서 모두 수소폭발이 일어난 직후였다. 그 때는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는 "아오모리에 사는 여동생이 찾아와 다짜고짜 피난해야 한다며 차에 타라고 했다"며 "귀중품과 간단한 가재도구만 챙겨 남편과 함께 급하게 집을 빠져 나왔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정부나 관청으로부터 피난을 지시받은 사실조차 없었다"며 "나중에 뉴스 등을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서 더 분통이 터졌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스즈키씨가 떠난 뒤 한달이 지나서야 이 일대를 긴급 대피준비지역으로 지정했다. 동생집에서 몇 달간 더부살이를 했던 스즈키씨는 주오다이 주민들을 위한 가설주택이 건설된 지난해 7월 거처를 옮겼다. 주민들에게 일시 귀가가 허용된 지난해 10월 집으로 돌아가 TV를 비롯, 나머지 가재도구를 챙겼다.
스즈키씨는 "칠십 평생 살아온 고향이 그리운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정부와 지자체가 방사성 물질 오염제거작업을 마쳤다고 아무리 떠들어대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스즈키씨에게는 이제 주오다이 가설주택단지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이곳에는 히로노마치에서 피난 온 주민 235세대 660여명이 함께 살고 있다. 250여명의 주민이 남아있는 히로노마치의 2배가 넘는다. 이중 절반 가량이 60대 이상 노인들이어서 외롭지도 않다.
하지만 불안감은 남아 있다. 가설주택 거주 기간이 2년으로 제한돼있기 때문이다. 스즈키씨는 "정부가 주민들에게 귀향을 종용하기 보다는 뜻하게 않게 고향을 등진 주민들이 함께 살 수 있도록 가설주택 거주 기간을 연장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와키=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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