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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학교의 조직체계를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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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학교의 조직체계를 바꿔라

입력
2012.03.0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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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다. 독자들께서는 내가 학교에 가면 어디에서 근무한다고 생각하시는가. 국어교사니까 국어과에서 근무한다고 생각하는가? 틀렸다. 나는 교사가 된 후 단 한 번도 국어과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국어교사들이 그러하다. 국어교사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영어 수학 교사들도 그러하다. 사실상 학교의 모든 교사들이 그러하다. 그러면 어디에서 근무하는가? 교무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근무한다.

만약 내과의사가 내과에서, 외과의사가 외과에서 근무하지 않고 사무처(원무과)에서 근무한다면 병원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혹시 그런 병원이 있다면 절대로 가지 말라.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마찬가지다. 국어교사가 국어과에서 근무하지 않고 부서에서 근무하는 학교가 있다면 자녀를 보내지 말라.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아, 그런데 죄송하다. 우리나라에는 그렇지 않은 학교가 없다. 학교를 그만 두지 않는 한 그런 학교를 피할 방법은 조금도 없다.

학교의 가장 중요한 일은 수업이다. 물론 인성교육도 중요하다. 이러한 교육 활동은 교사의 존재이유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교육만 하지 않는다. 교육을 지원하고 보조하는 교무행정업무도 대부분 교사가 한다. 흔히 이런 업무를 잡무라 부른다. 교사 본연의 업무가 아니란 의 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학교의 기본 체계가 이러한 잡무를 토대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영어교사가 영어과에서 수학교사가 수학과에서 근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교무행정업무(업무)를 담당하는 각각의 부서에서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사의 승진을 결정하는 것도 교육이 아니라 업무다. 교장이 되려면 교육이 아닌 업무에 열정을 쏟아야 한다. 학연 지연 뇌물 청탁이 완전히 배제된 100% 깨끗한 인사가 이루어질 때도 교육에 대한 열정과 능력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업무다. 이러니 교직 사회의 풍토와 문화가 업무를 위주로 형성될 수밖에 없다. 교육이 교사들의 삶과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가 교사들의 삶과 생각을 지배할 수밖에 없다.

학교 교육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학교의 조직체계를 수업(교육) 위주로 바꿔야 한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 교사의 업무를 모두 덜어내야 한다. 하지만 업무경감에 그쳐선 안 된다. 반드시 학교의 조직체계까지 바꿔야 한다. 교사의 업무만 줄이는 데에 그치면 학교 교육은 크게 좋아지지 않는다. 업무 위주의 조직체계 그 자체로부터 여전히 심각한 비효율이 발생할 것이고, 업무 위주의 풍토와 문화도 그대로일 것이기 때문이다. 개혁의 본질은 학교의 기본 조직체계를 바꾸는 데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부터 교무행정지원사를 학교에 1명씩 지원한다. 이와 함께 각 학교로 하여금 교무행정업무전담팀을 구성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교사의 업무를 줄이고 학교의 조직체계를 바꾸기 위함이다. 과거에도 업무경감을 위한 노력은 많았다. 하지만 단순히 교사의 업무경감만을 꾀했을 뿐 학교 조직체계의 변화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업무경감 프레임을 넘어선 문제의식이 적잖이 받아들여졌다.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은 그런 문제의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 점 긍정적이다.

하지만 올바른 문제 인식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 당 1명의 인원투입으론 어림도 없다.(그것도 비정규직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압도적인 무력을 일시에 투입해야 한다. 소규모의 병력을 찔끔찔끔 투입하면 패배한다. 교무행정지원사의 투입도 그럴 수 있다. 물론 서울시교육청의 잘못만은 아니다. 예산과 권한이 부족해서 그런 것을 어찌 하겠는가. 하지만 성공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얼마나 진지하게 호소했는가 하는 점에선 아쉬움이 크다.

모처럼 제대로 된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기획된 정책 하나가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성공이 요원한 것만 같아 안타깝다.

이기정 서울 북공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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