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법적ㆍ제도적 시스템을 완비한 '아시아의 진주' 홍콩이 중국 품으로 되돌아간 지 15년 만에 심각한 중국화 현상을 겪고 있다. 공직자 부정 관행이 확산돼 부패청정국 이미지가 훼손되고, 대중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특별행정자치구로서 독립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뉴욕타임스는 "영국이 중국에 통치권을 반환(1997년)한 후 소수 거부들이 행정 핵심부를 장악, 홍콩의 투명한 법치주의 전통이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홍콩인들을 특히 실망케 한 사건은 최근 불거진 도널드 창 행정장관(자치구 수반)의 부패 스캔들이다. 6월 퇴임하는 창 장관은 재벌 친구의 호화 요트와 전용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은퇴를 대비해 초호화 아파트를 시세보다 싸게 부동산 재벌에게서 임대해 특혜 시비에 휘말렸다.
후임 장관으로 거론되는 인물들 역시 청렴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것으로 알려진 헨리 탕 후보는 무허가 지하시설을 갖춘 대규모 저택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고, 또 다른 유력 후보인 렁춘잉은 예술문화센터 건립과 관련한 분쟁으로 고소를 당했다.
현직 행정수반과 차기 수반 후보가 동시에 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것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일각에서는 공직 부패가 만연한 중국적 관행이 홍콩 정치문화를 잠식한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성공회 신부 풍치우드는 "홍콩의 도덕적 잣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부패한 지도자를 응징할 방법도 없다. 홍콩인의 숙원이었던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각계 대표 1,200명이 모인 선거인단이 장관을 선출하는데, 대부분이 대중교역을 우선하는 기업인들이라 베이징 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언론 자유도 후퇴하고 있다. 국제기자연맹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홍콩 언론에 대한 당국의 검열이 매우 심해졌고, 상당수 언론인들이 체포ㆍ구금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과의 지나친 경제적 밀착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홍콩 교역량의 절반이 중국 본토에 대한 수출입이어서 자칫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 경우 홍콩도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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