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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재정위기의 뇌관, 스페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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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재정위기의 뇌관, 스페인을 가다

입력
2012.03.0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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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오후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시내 푸에르타 델 솔 시민광장. 스페인 전국 대학생 연합회 소속 학생 시위대를 경찰이 이중삼중으로 에워싸고 있다.

학생들은 2시간 동안 '전열을 가다듬고 투쟁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정부의 교육 예산삭감을 맹렬히 비난했다. 시위에 참가한 대학생 수소(17)군은 "대학 지원예산을 줄이면 학생들이 학비를 더 내야 한다.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는데 과연 우리가 돈을 더 내고 공부를 계속해야 할 까. (이런 잘못된 상황을 바로 잡으려면) 이 시위를 스페인 전역으로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로존 4위 경제대국. 투우와 집시와 축구의 나라. 비옥한 땅과 따뜻한 날씨로 항상 축복이 넘쳤던 이 땅에는 지금 분노만 넘쳐나고 있다. 남유럽 4대 재정위기국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하나로 나라살림은 이미 거덜났고, 그 영향으로 부도와 폐업, 실업이 속출하고 있다. 국민들은 무능한 정부를 향해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마드리드는 원래 문화와 예술의 도시다. 하지만 화가와 연주가들로 넘쳐났던 거리는 재정위기 이후 복지삭감과 실업사태에 항의하는 집회 장소가 되어 버렸다. 마드리드 노동분쟁 심판소에서 만난 전기수리공 하비(50)씨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해고를 당해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왔다"며 "지금 마드리드에는 나처럼 회사에서 쫓겨나 몇 달씩 노는 사람들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대표적 휴식처였던 솔 광장은 몇 블록 떨어진 넵튠 광장에서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행렬의 종착지가 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은 점점 더 뜸해져, 주변상인들은 또 한번 울상을 짓고 있다. 내수경제가 마비된 상황에서 믿을 건 관광수입뿐인데 이마저도 줄어드는 상황, 거대한 악순환의 고리가 스페인 경제를 휘감고 있는 셈이다.

스페인 제2의 도시인 바르셀로나 사정 또한 마찬가지다. 스페인 전체 수출입의 약 20%가 바르셀로나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나라경제의 심장부이지만, 거리 상권에는 문닫은 상점들만 계속 늘어나고 있다. 최근까지 식당을 운영해왔다는 아나(39)씨는 "주변에 크고 작은 회사들이 많았는데 재정위기 이후 하나 둘씩 문을 닫으면서 수익이 90% 이상 줄어들었고 월세도 못 내는 상황이 돼 결국 가게를 정리했다"고 푸념했다.

문구점을 했다는 샤비에르(37)씨도 "1년 반 동안 볼펜 몇 자루 판 게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면서 "가게를 20%나 싸게 넘긴 뒤 이렇다 할 일조차 없어서 그냥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바르셀로나의 중심지인 에이 샴플라 아리바우 거리에는 한 블록 당 매물로 나온 흉물스런 점포들이 3~4개씩 목격되고 있는 실정이다.

누구도 스페인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2007년까지만 해도 스페인 경제는 유로존 내에선 높은 축에 속하는 3~4%의 안정적 성장을 구가했던 터였다. 하지만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그 후폭풍으로 유럽 전역에 국가부도위험이 번져가면서 스페인 경제는 수직의 추락을 거듭했다. 호황기 땐 숨어 있던 재정적자의 유령은 순식간에 경제를 집어 삼킨 것이다. 지난해 4분기 실업률은 무려 22.9%까지 치솟았고, 실업자 수는 527만3,000명에 달했다.

문제는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는 점. 재정개혁을 위해선 정부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이런 긴축 과정에서 국민들은 복지혜택축소와 소득감소, 일자리실종 등 더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만약 이 통증을 거부한다면 재정위기는 더 악화돼 국가부도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이래도 고통, 저래도 고통만 남은 셈이다.

스페인은 이제 더 줄일래야 줄일 수 없는 상황까지 도달했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가 마침내 2일 "올해 재정적자비율이 애초 예상했던 수준(4.4%)을 지키기 어려우며 아마도 5.8%에 달할 것"이라고 선언하자, 다른 유럽국가들은 스페인의 긴축 및 재정개혁의지를 의심하면서 '그런 식이라면 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과연 이 갈등과 진통, 고통의 끝은 어디일지 누구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마드리드(스페인)=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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