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커피전문점은 총 9,400여개. 1년에 배출하는 커피찌꺼기의 양만 7만여톤으로 파악된다. 이런 '커피전문점의 시대'에 커피찌꺼기로 버섯 농사를 짓겠다고 나선 자칭 '도시 농부'가 있다. 이현수(35) '꼬마농부' 대표다.
4일 오후 경기 고양에 있는'꼬마농부'의 사무실 겸 창고. 이씨가 어깨에 둘러 멘 묵직해보이는 자루를 저울 위에 내려놓았다. 자루 무게는 '10㎏'. 인근 한 커피전문점에서 반나절 동안 배출한 커피찌꺼기다. 그는 "커피 한 잔을 만드는 데 원두의 0.2%만 사용하고 99.8%는 버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씨는 "땅에 매립된 커피찌꺼기가 지구온난화를 일으킬 위험이 이산화탄소보다 25배나 높은 메탄가스를 발생시킨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활용 방안을 모색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던 중 책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접했다. 1990년대 이미 커피찌꺼기의 주요 구성 성분인 목질 섬유소가 버섯을 잘 자라게 한다는 게 실험을 통해 증명된 것이다. '생태계의 청소부'라는 버섯의 별칭에 걸맞게 버섯을 재배하고 난 후의 커피찌꺼기는 훌륭한 퇴비로 쓰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어째서 일까. 그는 "그대로 땅에 묻히면 지렁이 같은 흙 속 생물에게 해가 되는 커피찌꺼기의 카페인 성분을 버섯균이 분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평소 농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막상 커피찌꺼기에서 버섯을 키워내기란 쉽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일찌감치 이에 성공한 미국의 소셜벤처 'BTTR' 에 이메일을 보내고 경기도농업기술원의 버섯연구소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알려줄 수 없다"거나, "원래 버섯을 재배하는데 쓰는 톱밥이나 면실피(목화솜에서 솜을 분리하고 남은 부산물)를 섞지 않으면 안 된다. 포기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오기에 사회적기업 관련 컨설팅 회사를 그만 두고 집에 틀어 박혀 방 하나를 아예 '실험실'로 만들었다. 버섯이 자라기에 적합한 탄질률(탄소와 질소의 비율), 커피찌꺼기의 양, 온도와 습도 등을 알아내기 위해 독학했다. 경기 여주의 버섯 농가를 수시로 드나들며 교육도 받았다. 6개월 간 버섯은커녕 곰팡이로 하얗게 뒤덮인 커피찌꺼기를 수없이 목격하고 나서야 기다리던 느타리버섯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게 지난해 9월이었다. 이후 같은해 12월부터 자신의 노하우를 담아 '지구를 구하는 버섯친구'란 이름의 버섯재배키트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하루 3번 물을 주고 습한 곳에 놓아두면 열흘 후 커피찌꺼기에서 버섯이 자라는 상자다. 한 개당 9,000원인 버섯재배키트는 3개월 만에 600여개 가량 팔렸다. '꼬마농부'의 연구원 김병준(25)씨는 "커피찌꺼기를 이용해 손쉽게 버섯을 기른다는 점에서 아이들의 생태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용 교재로도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꼬마농부'는 올해 '고양시 예비사회적기업 육성사업' 대상자로 선정됐다. 생산 과정을 자동화해서 버섯재배키트의 생산량을 더 늘릴 계획이라는 이씨는 "사람들이 농사의 기쁨을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는 상품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양=글·사진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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