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숨 바쳐 대피방송한 천사의 목소리 잊을 수가 없습니다"
"쓰나미가 밀려온다."
오후 3시 15분 옥상에서 "쓰나미가 밀려온다"는 함성이 들렸다. 미키는 양손에 마이크를 쥐고 일어섰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큰 해일이 오고 있습니다. 빨리 빨리 빨리 높은 곳으로 도망가세요. 빨리 언덕으로 도망치세요."
시꺼멓게 모습을 바꾼 해일은 섬뜩한 소리를 내며 방조제 수문을 가볍게 넘어왔고 가차없이 마을을 집어삼켰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미키를 비롯한 직원들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뛰어 올랐다. 어디선가 "절대 손을 놓지 말라"는 긴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쓰나미는 방재청사 옥상마저 단번에 습격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30여명의 직원 중 10여명이 남았지만 미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사이타마현 도덕교과서 부교재에서)
엔도 미키(遠藤美希). '미래의 희망'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24세의 이 여성의 이야기가 사이타마(埼玉)현 도덕교과서 부교재에 실린 것은 위기의 순간 보여준 자기 희생의 정신에 일본 사회가 경의를 표한 것이다. 2011년 3월 11일 미야기(宮城)현 미나미산리쿠(南三陸) 마을에 거대한 쓰나미가 덮쳤을 때, 한국의 읍사무소에 해당하는 야쿠바(役場)의 공무원이던 엔도는 주민 대피를 독려하는 방송을 했다. 주민들은 엔도의 다급한 목소리에서 쓰나미의 위험을 직감했고 긴급히 고지대로 피신할 수 있었다. 당시 마을 주민 1만7,700여명 중 절반 이상이 엔도의 방송을 듣고 피난에 나서 목숨을 건졌다. 일본 열도는 엔도를 두고 '천사의 목소리'라고 불렀고 사이타마현은 그의 사연을 교과서 부교재에 싣기로 했다. 일본의 여류시인 고라 루미코(高良留美子)는 쓰나미를 화자로 한 시에서 '나(쓰나미)는 그녀를 삼켰지만 지금도 그 목소리는 내 속에서 울리고 있다'고 했다.
그를 기리는 행사가, 기자가 찾아간 1일 낮 12시 미나미산리쿠 재난방재센터에서 열렸다. 엔도를 비롯해 당시 쓰나미에 희생된 방재센터 직원들의 넋을 위로하는 합동 위령제였는데 개신교, 천주교, 불교, 신도 등 여러 종교인이 함께 했다. 미야기현 종교인들이 쓰나미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쓰나미 피해로 앙상한 철골자재만 남은 이 3층짜리 건물에 모인 것이다. 목탁과 염불, 찬송가에 이르기까지 영혼을 달래는 방식은 달랐지만, 묘한 어울림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엄숙하고 진지한 자리였다. 이날 위령제를 이끈 관계자는 "이들의 희생은 종교를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다"며 "종교인으로서 본받아야 할 일이라고 판단, 합동 위령제를 했다"고 전했다.
50대 남성은 가지고 온 향을 피우고 합장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이 남성은 "쓰나미 당시 빨리 대피하라는 여직원의 목소리를 듣고 가족과 함께 높은 곳으로 뛰었다"며 "나중에 그의 이름이 엔도라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는 나에게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지만 향불로 영혼을 위로하는 것 외에 해줄 것이 없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사이타마에서 온 사토 에이코(佐藤栄子ㆍ34)씨는 "딸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데 교과서에 엔도의 이야기가 실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며 "최후의 순간까지 대피 방송을 위해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는 사실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고 말했다.
미나미산리쿠=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 떠 내려온 구조물 '철거-보존' 고민
'기적의 소나무'는 방부제 처리 작업을 통해 사후에도 현장에 남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반면 '천사의 목소리' 엔도 미키의 위령소가 마련된 방재센터는 조만간 철거된다. 쓰나미 피해로 뼈대만 남은 철골조의 부식이 심해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는데다 "방재센터만 보면 악몽이 되살아난다"며 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쓰나미 재해 현장에서는 지금도 사고 당시 피해를 입은 건물 잔해와 쓰나미에 떠내려온 부산물을 두고 철거할 것인지 보존할 것인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미야기(宮城)현 게센누마(気仙沼)시는 도호쿠 대지진 당시 쓰나미에 떠내려온 유조선이 폭발하면서 수마와 화마를 함께 입었다. 주민 1,80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일부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게센누마 JR철도 시시오리가라쿠와(鹿折唐桑)역 앞 사거리 도로에는 길이 60m의 330톤급 어선 제18교토쿠마루(共徳丸)호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쓰나미가 해안에서 1㎞ 가량 떨어진 이곳까지 배를 밀어낸 것이다. 일본 전역에 남아있는 쓰나미 흔적 중 가장 큰 구조물인 이 선박을 보기 위해 방문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게센누마시는 이 지역에 '진혼의 숲'이라는 기념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시 관계자는 "지진 희생자를 추모하고 쓰나미의 위력을 후손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며 "정부에 예산 지원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히로시마(広島) 원폭 돔도 보존을 결정할 당시 주민 반대가 많았지만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있다"고도 말했다.
미야기현 이시노마키(石巻)시는 항구 근처의 도로 중앙분리대로 떠내려온 10m 크기의 모형 통조림을 보존하기로 했다. 이 모형 통조림은 수산가공회사 기노야이시노마키수산 본사 건물에 붙어있었으나 쓰나미로 500m 가량 떨어진 현재의 위치까지 떠내려 왔다.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시는 쓰나미로 폐허가 된 마을에 앙상하게 늘어서 있는 전봇대를 부흥의 상징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러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게센누마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한 주민은 "기념공원을 조성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고 이후에도 많은 관리비가 들어갈 것"이라며 "차라리 그 돈을 재해 복구비용으로 주민에게 나눠주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주민 요구로 쓰나미 부산물의 철거를 결정한 곳도 적지 않다. 이시노마키시는 쓰나미로 마을의 민박집 지붕으로 떠밀려온 관광유람선을 최근 철거했다. 이와테현 오쓰치초(大槌町)도 공민관 옥상에 걸린 대형 버스를 쓰나미 발생 1주년을 하루 앞둔 10일 철거키로 했다.
이마이 노부오(今井信雄) 간사이학원대 교수는 "재해 현장 보존이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피해 지역 주민을 납득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게센누마=글·사진 한창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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