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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베이징의 미친 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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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베이징의 미친 집세

입력
2012.03.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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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중국의 한 명문대를 졸업한 A씨는 한국 기업의 중국 법인에서 일하고 있다. 그가 받는 월급은 6,000위안(약 106만원) 정도. 그러나 저축은 꿈도 못 꾼다. 방 한 칸짜리 월세로 3,000위안(약 53만원)을 내고 기본 공과금과 생활비만 지출해도 남는 게 없다. A씨는 "사귀는 사람이 있지만 언제 결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방에 살면서 베이징에 방 세 칸짜리 집을 갖고 있는 B씨는 요즘 어디로 해외여행을 갈지 고민이다. 그가 매월 받는 집세가 무려 2만위안(약 355만원). 가만히 앉아서 거액을 만지는 것이다. 통상 중국에선 보증금 1개월치와 월세 3개월치를 미리 받는 만큼 집세가 안 들어와 속 썩을 일도 없다.

언론사의 특파원이 현지 부임해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집을 구하는 것이다. 지난달 말 중국에 도착, 집을 구하기 위해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적어도 베이징(北京)의 부동산 시세는 온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발품을 팔면서 가장 놀란 것이 베이징 집 값과 주택 임대료가 다른 물가에 비해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유럽이 손을 내밀어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중국의 위상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수도 베이징이나 경제 중심지 상하이(上海)의 집 값은 이미 서울이나 뉴욕을 추월한 상태다. 부동산 시장의 척도로 인용되는 상하이시 신규 주택 가격은 지난달 ㎡당 평균 1만9,831위안(약 352만원)을 기록했다. 최근 중국 정부의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으로 집 값이 그나마 떨어져 이 정도다. 베이징의 버스 요금이 0.4위안(약 70원ㆍ전용카드 사용시)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집값이 얼마나 높은지 가늠할 수 있다.

그래도 집 값은 다소 떨어지고 있지만 임대료는 오히려 더 오르는 추세다. 베이징 중심가의 240㎡짜리 호화 아파트는 월세가 7만위안(약 1,240만원)이나 되는데도 세입자가 줄을 서 있다. 베이징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왕징(望京)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온돌 깔린 방 세 칸짜리 아파트는 월 임대료로 1만5,000위안(약 266만원)을 내야 한다. 이 정도 아파트는 집 값이 700만위안(약 12억4,000만원)을 넘나든다.

이처럼 집세가 오르면서 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삶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집 없는 사람은 아무리 일해도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는다. 반면 집 있는 사람은 불로소득으로 엄청난 부를 쌓고 있다. 2012년이란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조적인 두 부류 중국인의 모습은, 사회주의 국가라 해도 이미 빈부차가 커질 대로 커져 아예 계급으로 고착하고 있는 중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전히 중국이 낯선 사람의 느낌이 이 정도라면, 중국인의 체감지수는 더 할 것이다. 자연히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중국 정부가 서민용 주택이라 할 수 있는 '보장방'(保障房)을 연 1,000만가구씩 공급하겠다고 나선 것이나 올해 양회(兩會)에서 나올 민생정책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이 그 동안 보여준 고도성장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종래 방식을 고집하다가는 안정적 발전을 담보하기 힘들어진 상황이다. 중국 기층민은 성장의 혜택이 일부 계층만의 부로 축적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가슴에 분노와 울분을 쌓고 있다. 중앙 정부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제 변방의 소수민족이 아니라 베이징시 한복판의 민심이다. 올 가을 등장할 새 지도부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이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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