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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부러워하는 과학자] <2> 노도영 GIST 교수-유건호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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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부러워하는 과학자] <2> 노도영 GIST 교수-유건호 경희대 교수

입력
2012.03.04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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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경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이 실력파 후배로 치켜세운 노도영 광주과학기술원(GIST) 신소재공학부 교수가 이번에는 사람 냄새 나는 과학자라며 유건호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를 소개한다.

고백하자면 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성격이 아니다. 차갑고 괴팍하다는 얘기도 종종 들었다. 자연의 원리를 밝히는 물리학자에게 중요한 건 자연과의 관계 맺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람과의 관계 맺기는 뒷전이었다. 유건호(52)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는 그런 내게 '따듯한' 물리학자를 꿈꾸게 한 사람이다.

1985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대학원 입학 허가를 받았을 때였다. 기쁨도 잠시, 눈앞이 캄캄해졌다. 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인터넷도 없던 당시엔 유학 정보 구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으니까. 헤매고 있는 내게 뜻밖의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태평양을 건너온 그 편지에는 낯선 유학길을 떠날 학생에게 큰 도움이 될 만한 준비사항들이 조목조목 적혀 있었다. 보낸 사람은 유건호. 그였다. MIT에 유학을 가있던 선배에게 따로 대학원 입학 소식을 전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편지를 보내왔는지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후에도 유 교수는 MIT로 유학 온 후배들을 곧잘 챙겼다.

유 교수에게서 남다른 선배의 모습을 처음 본 건 서울대 물리학과 재학 시절이었다. 당시 난 전공을 꽤나 즐겼다. 수리물리학 한 과목만 빼고. 물리학에서 쓰는 고급 수학을 배우는 이 과목 앞에선 유독 골골댔다. 어찌나 어렵던지 동기 60명이 아까운 청춘을 문제 풀이에 바친다며 하나같이 툴툴거렸다. 다음 수업까지 매번 10여 개 문제를 풀어가야 했는데, 다 푼 이는 다섯 명도 안 됐다. 그때 유 교수는 대학원 조교였다. 자기 공부도 벅찼을 텐데, 그는 골골대던 후배들을 불러 문제의 함정과 접근 방법을 일러줬다. 지금도 연구하는데 긴요하게 쓰는 수리물리학의 기본을 난 교수가 아닌, 그에게서 배웠다.

유 교수는 미국 3대 기업연구소 중 하나인 벨 연구소에서 일하다 1991년 경희대로 부임했다. 반도체 안에 있는 전자의 에너지와 운동량을 주로 연구하는 그는 응용물리학 분야의 국제학술지에 많은 논문을 냈다. 그 중엔 한 과학자와 20여 년 공동연구하며 발표한 논문도 여럿이다. 공동연구는 과학자들이 서로 '윈-윈'하려고 시작하지만 사실 유 교수처럼 오래 가기 힘들다. 아무리 공동연구라도 적잖은 과학자들이 일단 내 성과부터 챙기려 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신뢰가 쌓이기 쉽지 않다. 과한 경쟁 탓이다. 나 역시 대학원 후배가 교수로 먼저 임용되는 걸 보고 "졌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상대를 이기려 할수록 과학의 기본인 객관성을 잃고 과욕에 빠지기 쉽다.

한국의 이공계 대학 교수는 외국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매년 이뤄지는 성과평가 탓에 일상이 전쟁터다. 마음도 삭막해진다. 하지만 연구는 결국 사람이 모여서 하는 것이다. 동료 과학자가 경쟁자이기 전에 동반자여야 하는 이유다. 식상하다 싶을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몸소 이를 실천하는 과학자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과학을 여럿이 '함께' 하는 방법, 난 그걸 유 교수에게 배운다.

정리=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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