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의 회사 돈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에 대한 첫 공판이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공판 시작 10여분 전인 이날 오전 9시50분쯤 에쿠스 차량을 타고 서초동 법원종합청사에 도착한 최 회장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포토라인에 서서 "성실하게 재판에 임하고, 오해를 풀어내겠다"고 말했다. 공판정 피고인석에 자리잡은 최 회장은 구속된 동생 최재원 부회장과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수의를 입고 나타나자 굳은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검찰은 최 회장의 유죄를 강하게 주장했다. 검찰은 "주식 외에 재산이 없어 현금 동원이 어려운 피고인이 계열사를 통해 서민금고인 저축은행에서 자금을 끌어다 펀드 투자로 가장해 해외로 빼돌린 뒤 횡령했다"며 "계열사 임원들에게 보너스를 과다 지급한 뒤 반환받아 현금으로 보관하며 자녀 유학비 등 개인 용도로 썼는데, 이를 누가 정하고 지시했겠나"라고 최 회장을 압박했다.
검찰은 또 "이 사건은 형사책임을 면하기 위해 미리 안팎의 자문을 받고 이른바 바지사장까지 내세워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것"이라며 "여타 대기업 횡령 사건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범죄여서, 총수는 빠질 수 있도록 하는 판결로 재벌기업에 횡령 노하우와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의 변호인들은 "SK그룹은 SK에너지와 텔레콤이 두 축을 이루는데, 내수의 레드오션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 상장 등 다각화 노력을 하고 있다"며 기업 상황을 설명한 뒤 "펀드 조성 자체가 범죄 목적이었다는 검찰의 주장은 과장"이라고 반박했다.
최 회장은 대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변호인 변론 중간에는 검찰을 노려보기도 했다. 공판 내내 고개를 떨구고 있던 최 부회장과는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최 회장은 변론 기회가 오자 "어쨌든 사회에 이런 정도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게 생각한다. 다만 제가 어떻게 이런 오해까지 받을까 속으로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최 회장과 동생 최재원 부회장은 SK 계열사를 통해 636억원을 횡령한 혐의, 계열사의 해외 펀드 투자금 992억원을 전용한 혐의를 각각 받고 있다. 김 대표는 SK 계열사 투자금 500억여원을 차명계좌로 빼낸 혐의로 기소됐다.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이원범)는 15일부터 일주일에 한 차례씩 재판을 여는 등 집중심리를 통해 이르면 5월말 결심공판을 할 예정이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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