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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근로시간 단축, 새 노동체제의 정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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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근로시간 단축, 새 노동체제의 정초석

입력
2012.03.0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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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설화 속 인물 파우스트는 대문호 괴테에 의해 시대정신의 개척자로 재탄생한다. 쾌락을 위해 영혼까지 팔았지만, 번민 끝에 이성과 의지를 회복한 파우스트. 그는 당시의 기독교적 속박을 거부하고 이성의 시대정신을 회복한 상징이다. 200년 전 희곡이 지금 우리에게 새로운 것은, 정초선거라 불리는 두 차례의 선택을 앞둔 현 시기가 새 시대정신과 이를 담을 노동체제가 무엇인지 묻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화두인 근로시간단축은 단순한 정책이슈가 아닌 새 노동체제의 구상을 위한 정초질문이다. 최장근로시간 국가라는 오명은 '몸으로 때우기식 경제'라는 앙시앙 레짐의 표상이다. '87년 체제'는 절반의 진보를 얻었지만 이면에 장시간 노동체제를 잉태하고 말았다. 이는 대자본과 편협한 노동운동이 담합해 만든 비정상적 균형이다. 비용경쟁력만을 추구한 대자본은 초과근로수당이라는 싸구려 당근으로 법이 정한 최소한의 제한마저 어겨가며 장시간 노동을 꼬드겼다. '노동운동= 임금쟁취'라는 낡은 등식에 사로잡힌 노동운동 역시 눈앞의 당근을 받아 물며 구체제의 기득권자가 됐다.

낡은 체제가 제공한 비용절감과 초과임금은 독이 든 사과로, 그 결과는 부끄럽기만 하다. 경영현장에서 창조적 파괴와 혁신의 기업가정신은 레토릭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눈앞의 초과임금만을 좇은 대공장노동조합은 800만이 넘는 비정규직을 외면한 채 연대라는 대의적 기풍을 잃었다.

이를 극복하는 첫 걸음은 근로시간단축이다. 정부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고 연장근로시간 제한이 없는 특례업종을 줄여 장시간노동을 억제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노동계는 환영하면서도 시간급제의 임금구조 개혁 없이는 임금만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고, 대기업은 늘 그러했듯 비용이 늘어난다며 반대했다. 입장이란게 일면의 타당함이 있고, 당장의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이해하지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근로시간단축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 세대에 물려줄 새로운 노동체제를 구상하는 역사적 과제인 만큼 노사 모두는 구시대적 소아를 내려놓고 새 시대의 대의를 품어야 한다. 노동계는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한 헤이마켓의 역사를 되새겨라. 구체제의 비정상적 이득에 대해 '과감한 포기'를 선택하고 근로시간단축의 역사였던 200년 노동운동의 대의를 회복하라. 기업 역시 창의와 혁신, 인본주의에 터 잡은 '하이로드'의 전략을 추구하라. 상상력이 생산력인 지식의 시대에 언제까지 비용절감으로 경쟁할 것인가. 정부의 소임 또한 막중하다. 근시안적 실용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일자리 창출과 소비촉진에 효과적일 것이라는 대통령의 언급은 근로시간단축논의를 효과를 둘러싼 소모적 공방으로 왜소하게 만들 위험이 크다. 단지 일자리 몇 개 더 늘리자고 추진하는 단기적 방편이 아니질 않는가? 치밀한 보완책이 범정부적 차원에서 마련돼야 한다.

특히 52% 이상의 노동자가 종사하는 특례업종의 대부분이 중소기업임을 고려해 체계적 지원을 위한 산업정책과 복지정책이 아우러져야 한다. 현장을 살펴 허투루 낭비되는 작업시간을 따져보고 기업에게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과감한 혁신을 주문하는 고용노동부의 고군분투에 박수를 보낸다. 번민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개척한 파우스트처럼, 새로운 노동체제의 역사를 기록하는 시대적 소임을 당당하게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길 당부한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그레트헨의 지지로 답할 것이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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