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 통합예선이 끝났다. 이번 대회에는 한중일과 대만에서 무려 320명이 출전해 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출전선수가 워낙 많다 보니 대국장소가 부족해 한국기원 2층 대회장뿐 아니라 4층 본선대국실과 5층 연구생실까지 사용했다.
통합예선이 모두 끝난 후 대진표를 살펴보니 올해도 기권자가 꽤 많았다. 1회전 112판 가운데 17판, 2회전 104판 중 4판이 기권 처리됐다. 1, 2회전 통틀어서 10% 정도가 출전 신청을 해놓고도 대국장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권위 있는 세계대회 예선에서 열 판 중 한 판이 기권대국이라니 조금 낯부끄럽다. 일반 국내기전과 비교해도 너무 높은 수치다. 그나마 지난해 이 대회 예선대국 194판 가운데 29판이 기권 처리됐던 것에 비하면 크게 개선된 셈이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 지 모르겠다.
프로기사가 대회에 기권하는 건 물론 본인 자유이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대부분 별로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기원 관계자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비씨카드배가 통합예선 출전자에게 대국료를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답했다. 국내기전에서 기권할 경우 대국료를 받지 못하는 불이익이 있지만 비씨카드배는 어차피 예선 대국료가 없어 상대적으로 기권율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이유야 어쨌든 기권대국이 많아지면 대회의 격이 떨어지고 대진표 작성이나 대국실 배정 등 대회 진행에도 많은 혼란과 낭비를 초래하게 된다. 이번 대회서도 기권자들이 애당초 출전 신청을 하지 않았더라면 대국실 사정이 훨씬 나아져 선수들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대국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며칠 전 제1회 바이링배 세계바둑오픈 대회규정이 발표됐다. 9일부터 베이징에서 통합예선이 시작되는 바이링배는 우승상금이 180만위안(약 3억2,000만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국제기전이다. 한국기원 기전담당자는 대회 규모에서부터 아마추어에게도 문호를 개방한 것, 통합예선에 출전하는 국내외 기사들에게 여비나 숙식비는 물론 대국료를 일절 지급하지 않는 것까지 거의 모든 대회 진행 방식이 한국의 비씨카드배를 그대로 베꼈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 대회규정 제7조 '출전 신청을 한 뒤 특별한 이유 없이 참가하지 않는 선수는 다음 대회 참가 자격을 잃는다'는 조항이다. 간단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기권방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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