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37)씨의 미국 아파트 매입자금 수사를 진행하는 것인지를 놓고 의문이 커지고 있다. 수사는 처벌을 목적으로 하지만, 이번 수사의 경우 정연씨의 사법처리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의 13억원이 설사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노 전 대통령의 새로운 비자금인 것으로 밝혀진다 해도,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노 전 대통령은 이미 서거해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질 공산이 크다. 이번 수사의 실효성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만약 13억원의 '주인'이 정연씨로 밝혀질 경우,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적용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돈이 100만 달러로 환전돼 미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진 시점은 2009년이어서 공소시효(5년)도 살아 있다. 불법 외환거래를 한 양쪽 당사자는 모두 처벌 대상인데, 이번 사건의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가 나선 만큼 이번 사건에 대한 관심의 초점은 외국환거래법 위반이 아니라 정연씨가 13억원을 입수한 경위로 모아진다. 이것이 비자금일 경우 뇌물죄 등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뇌물죄는 일반적으로 공무원에 한해 성립하지만, 대법원 판례상 그 가족이 적극적으로 공모한 경우에 공동정범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정연씨가 대통령의 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뇌물이 오고가는 데 관여했다면 뇌물죄로 처벌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 해도 노 전 대통령이 이미 서거해 기소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딸을 뇌물수수 혐의로 처벌하기는 무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검찰은 노 전 대통령 한 명만 피의자로 입건했을 뿐, 정작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전달받은 권양숙 여사나 아들 건호(38)씨 등은 피의자로 입건하지 않았다. 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을 바라보고 돈을 건넨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따라서 검찰이 과거의 논리를 뒤집고 정연씨를 뇌물죄로 처벌하기는 쉽지 않은 셈이다. 특수부 출신의 한 검찰 간부는 "정연씨가 13억원의 출처로 밝혀진다 해도 외국환거래법 위반 외에 다른 혐의를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재산국외도피죄도 재산의 은닉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파트 거래가 목적이었다면 적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때문에 이 사건을 2009년 노 전 대통령 사건을 수사했던 대검 중수부가 맡은 것을 둘러싸고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단순한 외화밀반출 사건이라면 일선 지검의 외사부가 맡아도 될 텐데 대검 중수부가 수사 주체가 됐다는 것은 3년 전 수사와의 관련성, 곧 13억원의 출처를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의도로 읽히기 때문이다.
검찰은 "현재로서는 (100만 달러로 환전된) 13억원을 전달받은 것으로 보이는 아파트 주인 경모씨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사건"이라며 수사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모습이다. 검찰은 미국 체류 중인 경씨에 대한 조사가 급선무이며, 아직 정연씨나 권양숙 여사,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노 전 대통령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는 조사 여부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또 수사 실효성 논란에 대해서는 "수사 의뢰가 들어왔고 관련자들이 자진출두도 하겠다는데, 그럼 수사를 하지 말라는 말이냐"는 논리로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최근 박 전 회장에 대한 방문 조사, "노 전 대통령 수사 종료 선언에는 가족들도 포함된 것은 아니다"는 김경한 전 법무부 장관의 발언 공개 등 검찰의 행보와 동떨어져 보인다. 때문에 결국 검찰의 칼끝이 겨누게 될 종착지는 정연씨 등 노 전 대통령 측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검찰이 이번 수사의 향방에 설득력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친노 진영에 대한 고의적인 흠집내기 수사가 아니냐"는 의구심은 커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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