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닭은 A4용지 3분의 1 정도의 공간에 갇혀 산다. 컴컴한 조명 아래서 항생제 주사를 맞으며 매일 계란을 낳다가, 1년 뒤 산란율이 떨어지면 도계장으로 끌려간다. 암퇘지는 길이 2m, 폭 60㎝ 철망에 갇혀 평생 앉았다 일어서기만 반복한다. 그러면서 쉴 새 없이 새끼를 낳는다. 출산기계의 역할을 다한 암퇘지는 평생 단 한번 도축장으로 보내질 때 햇빛을 본다. 좁은 우리에서 성장촉진제를 맞으며 사육된 축산동물은 면역력이 약해 질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생산성만 추구하는 공장식 밀집 사육이 지속된다면 광우병, 에이즈와 같은 제2의 인수공통전염병이 인간을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몸을 옴짝달싹 하기 어려운 우리 대신 스트레스를 덜 주는 환경에서 생산되는 '동물복지 축산물' 정부 인증제도가 이달 중순부터 시행된다. 선진국처럼 법적으로 제도화된 '프리덤 푸드'(Freedom Foodㆍ생산과정의 윤리성을 강조한 축산제품)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는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따라 이르면 이달 중순부터 '동물복지 축산물 인증제도'를 시행할 것"이라고 1일 밝혔다. 검역검사본부는 동물복지 관점에서 산란닭의 사육 여건이 가장 심각하다고 보고 첫 인증대상을 계란으로 결정했다.
고시에 따르면 농장주는 1㎡ 면적에 성계(成鷄) 9마리 이하의 산란닭을 키울 수 있다. 또 닭들이 좋아하는 홰(닭이 올라앉게 가로질러 놓은 나무 등의 막대)를 계사 내 설치해야 하고 별도 산란장도 조성해야 한다. 또 골절 등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는 닭은 휴대용 전기충격기로 기절시킨 후 즉시 피를 뽑아 닭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
검역검사본부 관계자는 "인증제도가 시행되면 소비자들은 스트레스가 줄어든 질 좋은 축산물을 구입하고 농장주는 소득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검역검사본부는 내년에 돼지고기를 동물복지 축산물 인증대상에 포함시키고, 점차 육계, 한우, 육우, 젖소(우유) 순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검역검사본부가 소비자들을 상대로 동물복지 축산물 구입에 추가금액을 지불할 의향을 물었더니, 72(쇠고기)~87%(닭고기)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1회 구입시 최대 지불비용 의사는 한우 냉장 1등급 등심로스 600g이 7만1,804원이었다. 이는 같은 기준 일반 한우(5만원)보다 2만1,804원 비싸고 유기농 한우(8만원)보다는 8,196원 저렴한 가격이다.
국내 동물복지 축산 현황을 보면, 일부 농장주가 자율적으로 '프리덤 푸드'를 표방하는 축산물을 출하하고 있고, 기업 단위에선 2007년 풀무원이 유일하게 세계동물보건기구(OIE)가 정한 동물복지기준을 도입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반면, 스웨덴은 1990년대 초 조악한 우리에서 닭과 돼지의 양육ㆍ도살을 금지했고, 영국은 1994년 동물의 복지상태에 따른 로고를 축산물 제품에 표시하는 등 친환경 축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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