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얼마나 많은 분야가 뒷걸음질칠 것인가 우려했던 것은 특별한 혜안이 있어서가 아니다.(2008년 5월 8일 '그렇다 어쩔래 병' 2008년 6월 5일 '뒷걸음이나 치지 말아라') 음주운전이나 논문 중복게재 때문에 정부 고위직에 오르지 못했던 노무현정부에서 불과 몇 달 사이인데도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가 드러난 이들이 버젓이 장관과 수석자리에 올랐기 때문이고 논문 중복게재를 천하의 부도덕한 일로 비판하던 거대 언론이 군말 없이 '탈법'각료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내가 하면 무조건 옳다는 권력과 그 권력을 싸고 도는 거대 언론이 한국사회를 퇴보시킬 것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4년이 흐르고 보니 예측은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다. 고위공직자 내정자 전력에 부동산 투기나 위장전입이 없으면 이상한 지경이 되었다. 그게 문제가 되어서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하는 경우는 없다. 좀 심하게 서류를 꾸민다거나 스폰서로부터 주기적으로 뇌물을 받은 게 명백해진 사례만 일부 걸러졌을 정도이다.
과거에는 사회의 존경을 받는 문화인으로 선정되던 방송통신위원장의 경우에도 이명박정부는 초대 인사부터 과거 기자시절 뇌물수수가 문제가 됐던 대통령의 최측근을 임명했다. 2대까지 연임하며 대통령의 무한총애를 구가하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전직 보좌관의 뇌물수수건이 터지더니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뿌렸다는 의혹까지 겹치면서 자진사퇴했다. 이 사건에 최시중씨 본인이 관여됐는지 여부는 수사가 너무도 느리게 진행되어 언제나 알게 될지 모르겠다. 그 후임으로 내정된 이계철 전 KT 사장은 KT와 KT의 투자회사, 한국인터넷진흥원 같은 공공기관의 자리를 넘나들거나 중복근무하면서 고액임금을 챙겼다.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김재철 MBC 사장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쫓겨난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정 전 사장 해임이 잘못됐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과 MBC 파업이 시기적으로 겹치면서 방송사 사장 수준도 얼마나 떨어졌는지 비교하게 만든다. 이명박 정부가 문화관광부 감사원 검찰을 총동원하며 정연주 전 사장을 물러나게 한 이유는 KBS가 국세청으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을 적게 받았다는 게 전부다. 부정도 부패도 아니었고 공공기관으로 갈 정부 돈을 아낀 게 문제라면 문제인 정도였다. 반면 김재철 사장은 임명된 후 방송의 권력비판이 실종했고 그걸 문제삼는 구성원들의 파업에 대화를 회피하면서 기자협회장을 해고했다. 경영자를 비판하면서 기자와 피디가 해고되는 경우는 이 정부 들어 언론현장에서 너무도 쉽게 일어난다. 언론사의 수장이 언론의 기본조차 모른다는 증거다. MBC기자들이 폭로한 내용에 따르면 김재철 사장은 법인카드로 보석이나 명품을 구매하기도 했다는데 이렇게 너절한 수준으로까지는 떨어지지 않았길 검찰이 수사해서 밝혀달라고 하고 싶지만 지난 정부에서 대통령과 맞장이라도 뜰 기세던 검찰은 또 그런 역할을 해낼지 의심스럽다.
정책에 의혹을 제기한 피디수첩 피디는 구속까지 돼야 했고 여당 정치가의 남편이 판사로서 공정했나를 물었던 기자도 압박을 받고 있다고 한다. 방송이 정부정책 찬양 일변도여야 하고 보도를 문제 삼아 언론인이 구속까지 되어야 한다면 거의 박정희의 유신체제까지 뒷걸음쳤다고 봐도 된다. 국민들의 의식이 30여년전과는 다르다는 점이 뒷걸음치는 속도를 겨우 늦추고 있을 뿐이다.
방송사 사장에게 언론인의 전문성과 덕성은 고사하고 시정잡배의 부도덕만은 아니길 바란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초유의 시절을 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걸 누가 언론자유의 시대라고 부르는가.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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