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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의 낯 뜨거운 배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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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의 낯 뜨거운 배짱

입력
2012.02.2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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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겠습니다. 저는 2년 전 현실적인 문제로 회사를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이 일 저 일을 하다가 1년 전 인천의 한 홈플러스에 피자 가게를 열었습니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대형 피자 가게였습니다. 개업을 하자마자 '대박' 예감이 들었습니다. 피자를 사려는 고객들이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었냐구요?

장사 하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초기 투자비용이라는 게 있습니다. 가게를 빌리고 기계를 사고 직원을 고용해야 합니다. 홍보를 하는 데도 2~3개월은 걸립니다. 명함과 광고전단을 만들어 인근 아파트와 공장을 돌아다니며 판촉도 했습니다.

오전 8시에 나가 밤 11시에 퇴근했습니다. 주말이면 더 바빠 점심이나 저녁을 굶기 일쑤였습니다. 직원을 쓰면 되지 왜 굶냐구요? 아르바이트생 1명을 고용하면 최저임금 4,500원 안팎을 줘야 합니다. 카페 같은 선호 직장이 아니면 시간당 5,000원 이상 줘야 합니다. 하루 7만~8만원입니다. 그런 직원을 3~4명 고용해야 합니다. 가게 주인으로서는 밥을 굶더라도 직원 1명을 줄이는 게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석 달쯤 지나 가게가 자리를 잡나 했더니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홈플러스에서 똑 같은 피자 가게 하나를 더 들인다는 겁니다. 제 매장은 임대매장 3층이었고 새로 들어오는 피자 가게는 1층 직영매장에 위치했습니다. 당연히 경쟁이 안되겠죠. 1층 피자 가게가 문을 열자마자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졌습니다. 얼마 뒤 함께 고생했던 아르바이트생들을 한명 두명 내보내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주말에도 저와 직원 한 명만 일하면 충분할 만큼 매출이 떨어졌습니다.

절박한 심정에 홈플러스 본사를 방문했습니다. 본사 직원이 "홈플러스는 임대매장과 직영매장을 따로따로 관리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매장 내 경쟁을 하면 가격할인이 유도돼 소비자한테는 이득이 된다"는 말도 했습니다.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이 최근 한국 경제를 '수박경제'라고 질타했습니다. 겉으로는 시장경제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빨간색이라는 것이지요. 이 회장은 더구나 "홈플러스는 대로변에만 점포를 낸다"면서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일축했습니다.

대로변 뒤에 골목길이 100개는 넘는다는 걸 모른 걸까요, 아니면 대로변에 있는 사람만 대로변 가게를 이용한다고 생각한 건가요. 골목상권은커녕 홈플러스 내 임대매장도 잘 된다 싶으면 뺏어가는 회사 총수가 말하기에는 낯 뜨거운 얘기입니다.

수백만 자영업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지금, "정부가 이런 사람들을 보호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 회장의 배짱이 놀랍습니다.

이범구 사회부 기자 eb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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