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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제주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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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제주 수선화

입력
2012.02.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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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선비들은 수선화를 귀하게 여기며 좋아했다. 겨울 추위를 이기고 고고하게 피는 흰 꽃의 자태와 향기에서 선비의 기상을 느껴서였을 것이다. 연행(燕行) 다녀오는 이들에게 부탁해 어렵게 구근을 얻어 키우는 게 선비들에겐 호사요 큰 즐거움이었다. 추사 김정희도 그런 문화 속에 살았다. 그런데 1840년(헌종 6년) 55세의 추사가 절해고도 제주에서도 남쪽 끝 오지인 대정(大靜) 땅에 유배 와서 보니, 세상에! 지천에 깔린 게 수선화였다.

■ 지인 권돈인(權敦仁)에게 보낸 편지에서 추사는 이렇게 썼다."수선화는 과연 천하에 큰 구경거리다. 정월 그믐께부터 2월 초에 피어 3월에 이르러는 산과 들, 밭둑 사이가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하다."그런데 현지인들은 귀한 줄 모르고 소와 말에게 먹이거나 짓밟아 버리고 보리밭에 나면 원수 보듯 파낸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추사는 8년 유배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준 제주 수선화에 대해 수 편의 시와 그림을 남겼다.

■ 지난 주말 찾은 대정읍 추사 적거지(謫居址)에는 수선화가 만개해 있었다. 2월 찬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송이에서 170여 년 전 추사의 심정을 헤아렸다. 제주에 자라는 수선화는 두 종류다. 토속어로 몰마농이라고 하는 것과 금잔옥대라고 하는 종류다.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수선화가 언제 어떤 경로로 제주에 왔는지는 수수께끼다. 다만 백옥 받침에 황금잔을 올려놓은 듯한 금잔옥대는 여수 거문도에도 야생한다. 그래서 100여 년 전 이곳에 장기 주둔했던 영국해군이 들여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 그게 맞는다면 추사가 사랑한 제주 수선화는 몰마농이다. 제주사투리 몰은 말, 마농은 마늘이다. 이런 이름을 얻은 게 둥근 뿌리가 커서인지, 말이 먹어서인지는 확실치 않다. 어쨌든 추사가 유배 왔던 19세기 중반 제주 전역에 퍼져 있었으니 몰마농 수선화는 훨씬 오래전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추사 적거지에 심어진 수선화는 거의 다 금잔옥대다. 유적을 잘 꾸미고 가꿔도 세심한 곳까지 살피지 않으면 빛이 바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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