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표면적으로는 27일 19대 총선의 선거구 획정안을 합의해 통과시켰다. 하지만 여야는 이미 23일 중앙선관위가 제시한 안을 잠정 합의(한국일보 24일자 1면)해 놓고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아닌 척 '꼼수'를 부렸다.
여야는 지난 21일 선관위가 19대 총선에 한해 전체 의석수를 299석에서 300석으로 늘리는 내용의 안을 제시했을 때만 해도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야가 결국 선관위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했다. 실제 여야는 물밑 접촉을 통해 23일 저녁 잠정 합의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시 여야 간사 간 합의가 있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27일 오전까지도 민주당은 "의석수 증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 선관위 중재안으로 합의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미 사실상 선관위안으로 합의해 놓고 비난 여론을 의식해 '연막 작전'을 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든 대목이다.
여야가 비판 여론을 예상하면서도 의석수 증가라는 '무리수'를 택한 것은 결국 서로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합의된 안은 일단 외견상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텃밭인 영ㆍ호남에서 1석씩 줄이고, 각 당의 현역 의원이 있는 경기 파주와 강원 원주를 분구해 1석씩 늘리고 자유선진당이 강세를 보이는 세종시를 1석 증설함으로써 여야 간 균형을 맞췄다.
합의 과정에서는 그동안 우려됐던 게리멘더링(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임의로 조정) 현상도 나타났다. 경기 용인 기흥의 경우 인구수가 헌법재판소가 2001년 결정한'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편차 3대 1 이하 개정'원칙을 초과했으므로 분구돼야 맞다. 하지만 여야는 분구하기로 합의하지 않고 인구수가 적은 용인 처인구에 마북동과 동백동을 편입시켰다. 그러면서 행정구역과 선거구의 차이가 발생하자 이날 법사위에서 자구수정을 통해 용인 처인과 기흥, 수지를 각각 용인 갑ㆍ을ㆍ병 선거구로 명칭만 바꿔 주민들의 혼란을 막는 편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정개특위에서는 이번에 통ㆍ폐합 대상에 포함된 경남 남해ㆍ하동 지역의 새누리당 여상규 의원이 강하게 반발했다. 여 의원은 전체회의가 시작되자 회의장에 들어가 물리력으로 처리를 막으면서 소리를 지르다 방호원에 의해 끌려 나갔다. 선거구 조정 과정에서 자신의 지역구가 조정된 새누리당 이범관(경기 여주ㆍ이천) 의원도 기자회견을 갖고 "여주를 양평ㆍ가평에 붙여 놨으니 끝에서 끝이 180㎞이고 면적은 경기도의 5분의 1인 아프리카 대륙"이라며 "여기 당선자는 '라이온킹'이고 이곳 국회의원이 경기지사"라며 조롱 섞인 비난에 가세했다.
정개특위 회의에서도 농ㆍ어촌 출신의 새누리당 성윤환(경북 상주) 자유선진당 류근찬(충남 보령ㆍ서천) 통합진보당 김선동(전남 순천) 의원 등이 농ㆍ어촌 지역구가 줄어드는 것에 반발했다. 논란이 격화되자 새누리당 간사였던 주성영 의원은 성 의원을 향해 "본인이 남해ㆍ하동을 추천했으면서 그렇게 살지 마라. 정치를 하기 전에 인간이 돼라"고 거칠게 비난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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