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가장 유명한 단편소설'로 꼽히는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변신'. 그러나 카프카 자신은 이 작품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 소설을 막 탈고하고 나서 연인 펠리스 바우어에게 보낸 편지에 "결말이 나를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분명히 더 잘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라고 적었다. 이런 불만은 원고의 태반을 발표 안하고 불태워 버렸던 그의 완벽주의에 기인했지만, 더 직접적으론 직장 생활과 번잡한 집안일로 창작에 집중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의 표현이었다. 첫 단편 '선고'를 앉은자리에서 8시간 만에 끝마칠 만큼, 카프카는 무아지경의 집중력으로 단시간에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덧붙여 '변신'은 사랑의 열병에서 탄생했다. 카프카는 4개월 전 처음 만나 한창 구애 중이던 바우어에게 이틀째 연락이 없자 "비참한 가운데 침대 속에" 누워 있다가 문득 이 걸작을 착상하게 됐다고 일기에 적었다.
독문학자 이주동(66) 서강대 명예교수가 펴낸 <카프카 평전> (소나무 발행)은 이처럼 카프카를 둘러싼 흥미로운 사실들이 빼곡한 872쪽짜리 두툼한 책이다. 오스트리아 치하였던 체코 프라하의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가부장적 아버지 밑에서 자란 성장기,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깊은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법학 박사를 취득한 대학 시절, 낮에는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창작에 몰두했던 장년기, 폐결핵으로 40년 11개월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말년에 이르는 카프카의 삶을 연대기 순으로 다루면서 <실종자> <변신> <소송> 등 그의 대표작에 대한 해석을 곁들이고 있다. 소송> 변신> 실종자> 카프카>
이 교수는 독일에서 카프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 대표적 카프카 전문가. 한국카프카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발간 중인 카프카 전집(솔 발행ㆍ전 10권)을 기획해 이중 3권을 번역했다. 40년 넘게 카프카 문학을 천착한 내공을 바탕으로, 그는 3년에 걸친 폭넓은 자료 수집과 여러 번의 프라하 답사를 거쳐 이번 평전을 집필했다. 덕분에 카프카가 생전에 만난 사람들을 일일이 인터뷰한 책 등 해외의 최신 연구 성과까지 반영했고, '카프카는 무정부주의자였나' '카프카에게 아들이 있었나' 등 논쟁적 이슈에 대해 보다 설득력 있는 의견을 제시했다.
<카프카 평전> 은 가족, 친구, 연인 관계에서부터 대학 시절, 직장 생활에 이르는 카프카의 사생활 전반을 생생하게 복원함으로써 그의 독자적 문학 세계의 연원을 보여준다. 권위주의적인 가정, 죽기 이태 전까지 계속된 직장 생활을 통해 몸소 겪은 관료주의, 유럽 전체에 만연한 반유대주의, 1차 대전을 전후한 세계적 격변 등의 경험이 카프카로 하여금 인간의 불안과 절망, 소외를 직시하게 했다는 것이 이 책의 암묵적 판단이다. 덧붙여 이 교수는 "카프카 소설에 자주 나오는 반어법, 메타포적 표현은 '언어가 개념과 사물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가'를 근본적으로 회의했던 당대의 지적 풍토가 반영됐다"며 "그럼에도 카프카는 당시의 어떤 예술사조로도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작가"라고 말했다. 카프카>
좋은 전기물이 그렇듯, 이 책은 '자연인' 카프카를 만나는 것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그에 관한 몇몇 과장된 일화나 작품의 분위기에서 비롯됐을 '은둔자' 이미지와 달리, 젊은 날 그는 또래들처럼 여자들의 환심을 얻으려 조바심을 냈고, 직장에서는 상사가 아낄 만큼 일을 잘했다. 이 교수는 카프카가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열악한 일터에서 부상을 입고 보험공사를 찾아온 노동자들에게 몰래 보험금을 받아내는 요령을 가르쳐 주거나 변호사 비용을 대주기도 했다. 죽음을 앞두고 인생의 유일한 반려였던 도라 디아만트와 베를린에 살던 시절, 인형을 잃어버리고 울던 아이를 달래며 인형의 행복한 여행을 그린 동화를 써서 줬다는 에피소드는 가슴을 뻐근하게 한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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