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값이 심리적 마지노선 2,000원을 넘었다. 연일 치솟는 기름값에 자가용 몰고 다니기 무서운 세상이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시 지하철과 버스요금도 인상된터라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녀야 할 판국이다.
이런 와중에, 교통비 부담을 대폭 줄이겠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2015년 서울 수서에서 출발하는 KTX를 민간에 맡기면, 운임이 코레일보다 20% 인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책을 두고 공공성 훼손, 대기업 특혜, 안전성 저하 등 논란도 있지만, 다 제쳐두더라도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상황에서 운임이 무려 20%씩이나 인하된다는데 어느 소비자라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운임인하 조건을 의무화하고, 만약 운임이 내려가지 않을 경우 민영화 자체를 접겠다고 수차례 공언할 만큼 의지가 무척이나 단호하다.
그러나 이윤을 최우선 추구하는 민간기업의 생리상 과연 운임을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현재 KTX는 원가구조상 아무리 인건비나 경비를 줄여 효율적으로 운영한다고 해도 20%까지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에, 행여 조삼모사식 정책으로 국민들을 눈속임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게 사실이다.
코레일에 따르면, 현재 KTX 운임은 마케팅할인과 공공할인을 통해 평균적으로 약 19% 할인되어 제공되고 있다고 한다. 즉, 정부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민간기업은 여기에 20%를 추가적으로 할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KTX 동반석은 기본운임에서 37.5% 할인되어 판매되고 있는데, 민간사업자는 여기서 20%를 더 내려 결과적으로 반값에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서울~부산간 기본운임은 5만7,300원이지만 평균적으로 제공되는 금액이 약 4만6,000원이므로, 여기서 20%를 내리고 서울발과 수서발의 거리차이를 고려하면, 수서에서 출발하는 민간 KTX는 약 3만4,000원대로 책정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정부의 바람대로 서울~부산 KTX 운임을 3만원대로 낮출 수 있는 사업자가 나타날 수 있을까?
혹여 운임을 인하하더라도 매우 소폭 내리거나, 현재 시행되고 있는 각종 할인제도를 축소ㆍ폐지시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생색만 내어서는 곤란하다. 줄곧 운임을 20% 내리겠다고 호언장담 해놓고선, 막상 실제 이용하는 운임은 차이가 없다면 그 동안 정부는 국민들을 기만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또 초기에만 운임을 조금 내리는 대신 10년이 넘는 장기계약기간 동안 슬그머니, 계속적으로 운임을 올릴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운임상한제를 시행한다고 해도 물가인상률 보다 낮은 수준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인지 우려를 지우기 힘들다.
또한, 운임인하와 더불어 민간기업은 국가에 납부해야 하는 선로사용료도 더 많이 내야 한다. 철도시설공단의 부채문제가 심각한 상황인 만큼 운임이 인하되더라도 국가가 징수하는 사용료가 줄어든다면 그 만큼 국가재정과 국민혈세 부담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초과이익을 환수할 경우에는 공기업인 코레일이 운영할 때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까지 포함해서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재정측면에서 정책의 실익이 생긴다.
결국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국민편익 증가와 건설부채 감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 민간사업자는 운임을 20% 내리고 선로사용료도 훨씬 많이 내는 상황에서, 적정이윤을 크게 상회하는 수익을 낼 수 있을 만큼 초특급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과연 어느 기업이 위와 같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실현가능성에 대한 검증도 없이 국민들을 현혹시켜서는 안된다. 진정 국민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천세ㆍ전 코레일 여객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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