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는 1930년대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젊은 두 연인의 실제 범죄행각을 스크린에 옮긴 고전이다. 원제는 두 남녀의 이름에서 비롯된 '보니 앤 클라이드'(Bonnie and Clyde)다. 실화에 익숙지 않은 한국 관객들에겐 아무런 감흥을 전해주지 못했을 제목이다.
국내 개봉 제목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앞날은 개의치 않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방아쇠를 당기고, 미국을 떠돌았던 이들의 반항적 모습을 멋스럽게 반영한다. 물론 외국어 사용을 극도로 억압했던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겠지만.
1980년대까지 국내 개봉 해외영화의 외국어 사용은 일종의 금기였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처럼 원제를 우리 말로 풀어 개봉하거나,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Sundance Kid)처럼 일본에서 지어진 제목으로 소개되기 일쑤였다.
민주화 바람으로 표현의 자유 폭이 훨씬 넓어진 1990년대도 외국어 제목에 그리 관대하지 않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베트남전쟁 영화 '메탈자켓'(1987)은 1996년 늑장 개봉했는데 원제는 특정 총탄을 가리키는 군사용어 'Full Metal Jacket'이다. 외국어 제목은 네 자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당시 심의 기준에 끼워 맞추다 보니 원제의 뜻과는 전혀 상관 없는 기이한 제목이 탄생했다('메탈자켓'을 방탄조끼로 해석하는 관객도 꽤 있었다).
제목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요즘은 어떨까. 자유로움을 넘어 혼선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영어가 무절제하게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울트라 미라클 러브 스토리'(우습게도 일본영화다)와 '퍼블릭 에너미 넘버원'은 따라 읽기조차 귀찮다. 딱히 심오한 뜻을 지니고 있거나, 한글로 표현할 방법이 없어 영어 제목을 쓰는 건 아니다.
영화 내용을 곡해하는 한국식 영어 제목도 있다. 2010년 개봉한 '에브리바디 올라잇'의 원제는 'The Kids Are Alright'이다. 동성애 부부 사이에서 길러진 남매가 정자를 기증한 아버지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들을 담았는데,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원제 그대로 (어른들의 우려와 달리) '아이들은 괜찮다'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말 제목에 꼭 얽매일 필요 있겠냐는 지적, 그르진 않다. 하지만 언어도 깎고 다듬으면 보석이 되듯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원제를 한국식으로 표현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 않을까. 최근 가장 마음을 두드렸던 창조적 외화 제목은 일본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원제는 '奇蹟')이다. 가슴 설레게 하는 제목 때문에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예술영화로는 대박에 해당하는 4만 관객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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