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때 했던 40㎞ 철야행군, 산악종합행군 모두 고됐지만 마지막엔 즐기게 됐죠."
육군사관학교 개교 66년 만에 첫 여성 수석졸업자가 나왔다. 1998년 여생도 1기를 선발한 뒤로 14년만이다. 생도 199명 대표로 졸업증서를 받은 주인공은 윤가희(24) 생도. 24일 김상기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졸업식이 열린 서울 노원구 육사 연병장에는 "전투형 강군 육성에 기여하는 멋진 장교가 되겠다"는 윤 생도의 또렷한 각오가 울려 퍼졌다.
민ㆍ관ㆍ군에 여풍(女風)이 거세지기 시작한 지 오래지만 육사 첫 수석졸업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육사가 개교 52년 만에 여생도에게 문을 연 이후 첫해부터 '입학 1등'은 자주 여생도의 몫이 돼기도 했지만 엄청난 체력과 인내를 요하는 군사훈련, 체력점수 비중이나 보수적 문화 탓인지 '졸업 1등'은 모두 남생도 차지였다.
오죽하면 "여자후배 경례는 받지도 않는 선배들이 있었다"고 최초 여성 수석입학자 강유미 소령이 기억할 정도. 공군ㆍ해군사관학교에서 2003년, 2004년 이후 여성 수석졸업자가 4명, 5명씩 배출된 것만 봐도 육사의 '좁은 문'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미국 육사인 웨스트 포인트도 여성입학이 허용된 76년 이후 19년 만인 95년 여생도가 수석졸업생으로 고별사를 했다.
처녀지를 개척하고 육군 내에 산뜻한 파문을 일으킨 윤 생도는 "어릴 때부터 국가를 위한 삶을 살겠다는 막연한 꿈은 있었지만 사실 장래 희망은 영어교사였다"고 말했다. 대구외국어고에 진학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줄곧 군인을 목표로 한 동생 윤준혁(23) 생도의 영향으로 육사에 대한 정보를 접한 뒤 남매가 나란히 '호국의 간성'이 될 꿈을 키웠다.
재수를 거쳐 동생과 나란히 2008년 육사에 들어왔지만 학교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공부는 자신 있었지만 체력이 약한데다 해마다 이어지는 악명 높은 기본군사훈련, 산악종합행군, 낙하산 훈련의 혹독함에 후회도 했다. 그는 "3학년 때 도피 및 탈출 유격훈련 중에는 밤새 산을 헤치며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지만 약을 먹으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며 기염을 토했다.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키우고, 4년 동안 교내신문 '육사신보' 기자로 뛰며 교우관계도 넓힌 그는 결국 수석을 거머쥐며 여생도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3월부터 초임장교의 길을 걷게 된 윤 생도의 목표는 전공인 국제관계학과 정보병과를 살려 "국방 정보력의 발전을 이루고 전투형 강군 육성에 기여하는 멋진 장교"가 되는 것. 그는 "여생도가 이론수업에만 강하다는 고정관념은 많이 사라졌다"며 "앞으로도 체력과 지식 측면에서 모두 뒤처지지 않는 여장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초심을 갖고 복무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육ㆍ해ㆍ공군사관학교 및 간호사관학교는 각각 졸업식을 열고 해군 199명, 해사 130명, 공사 148명, 간호 63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공사 은석준(24) 생도는 F-4E 팬텀 조종사였던 은진기 예비역 중령의 뒤를 이어 장교의 길을 걷게 됐고, 쌍둥이 형제인 홍준기(23) 생도와 홈범기(24ㆍ공군학군단) 후보생은 나란히 임관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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