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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서울대 자연과학 공개강좌 둘째날/ "문학·사학·철학 소양 갖춘 과학자…새 꿈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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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서울대 자연과학 공개강좌 둘째날/ "문학·사학·철학 소양 갖춘 과학자…새 꿈이 생겼어요"

입력
2012.02.2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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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기술, 우리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작 하청만 하고 있죠."

한국일보와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가 주최하고 포스코가 협찬한 '제19회 청소년을 위한 자연과학 공개강좌-과학과 인문학의 소통'행사 둘째 날인 24일. 마지막 강연자로 나선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귀뚜라미의 소통과 지식의 통섭'이라는 주제로 학문간 통섭(統攝)에 무관심한 한국사회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최 교수는 "외국에선 학문간 벽이 낮고 교류도 많지만 한국에선 말로만 학문간 소통을 얘기한다"며 "생태학자인 내가 다른 학문에 관심이라도 보이면 '쟤는 뭐냐'는 투의 싸늘한 말을 듣곤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화 아바타를 예로 들면서 "한국은 전세계 애니매이션의 95%를 만들어낼 만큼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지만 정작 아바타 같은 대작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며 "그리스ㆍ로마신화를 꿰뚫는 통찰력이 아바타를 만든 핵심인데 한국에선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따로 놀아 결국 하청밖에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새 제품을 들고 나올 때마다 세계가 놀라곤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우리 삼성, LG는 곧바로 비슷한 기계를 만들어 내놨죠. 국내 기업들은 자신이 더 뛰어난 기술이 있다고 광고하지만 결국 잡스가 바꿔놓은 세상의 그림자만 따라가는 꼴입니다."

최 교수는"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애플이 있다"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인용하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주어진 과제를 하는 데만 익숙해요. 출제를 할 생각은 못하죠.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그의 이유 있는 비판에 서울대 문화관 대강당을 꽉 메운 1,800여 참석자들 표정에도 사뭇 진지함이 묻어났다.

최 교수가 "여러분 중에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인재들이 나와 4만불, 5만불 시대를 열기를 기대한다"며 강연을 마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휴식 시간엔 학생 수십 명이 최 교수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

"톨스토이가 주인공 안나로 하여금 불륜에 빠져들도록 만드는 장치 중 하나가 독서예요. 우리는 거울 뉴런 덕분에 책에서 읽는 것을 간접 체험하는데 안나 역시 소설 속 인물들을 좇아 연애를 경험하고 결국 브론스키와의 불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거죠."

이날 '톨스토이의 뇌 이야기'라는 주제로 강연한 석영중 고려대 러시아문학과 교수는 톨스토이의 명저 '안나 카레니나'의 한 구절을 읽으며 얘기를 풀어갔다.

석 교수는 "우리 뇌에는 타인의 행동을 마치 거울처럼 반사하는 거울 뉴런이 있는데 이 신경세포는 누군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는 물론이고 이야기를 듣고 읽기만 해도 반응을 한다"고 말했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흉내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 "뇌는 쓰는 만큼 발달하고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는 뇌의 가소성(可塑性)을 설명하면서 석 교수는 "톨스토이도 수만 페이지 분량의 책을 90권이나 쓰면서 끊임없이 공부했다"며 과학도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부단한 노력을 당부했다.

문상화(18ㆍ울산 외고2)군이"톨스토이가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것이 러시아의 추운 날씨와 긴 밤 때문 아니냐"고 질문하자 석 교수는 "그런 부분도 있죠"라고 답해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강연 후 이어진 퀴즈 시간에는 각종 서적과 아이패드2 등 다양한 경품을 두고 대강당을 가득 메운 학생들의 열띤 경쟁이 펼쳐졌다. "근대철학에서 가장 대표적인 과학은 수학에 기반한 물리학이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ㆍ중세과학에서의 대표적 학문은?(생물학)"이라는 질문에"신과학" "양자역학""화학" "철학" 등 학생들의 다양한 오답이 쏟아져 나왔다. "우주의 나이는?(137억년)" "타인의 행동을 거울처럼 모방하게 만드는 신경세포는 무엇인가?(거울 뉴런)"등 경품이 걸린 16개 문제가 출제될 때마다 대강당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터졌다.

이날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들은 저마다 만족감과 아쉬움을 얘기했다. 박우현(17ㆍ경주고2)군은 "어려운 뇌 이야기를 톨스토이로 풀어낸 점이 너무 재미있었다"며 "더 많은 얘기를 듣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강연을 듣기 위해 23일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는 조윤주(15ㆍ부산 방안중3)ㆍ수빈(13ㆍ부산 방안중1) 자매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진로가 분명해졌다"며 "최재천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과학도가 되겠다는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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