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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지하철, 일그러진 우리 시대의 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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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지하철, 일그러진 우리 시대의 풍속도

입력
2012.02.24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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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4호선 지하철 막말녀 동영상이 인터넷 검색순위에서 상위를 차지했다. 지하철 막말남(녀), 지하철 패륜남(녀) 이야기가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현상이 됐지만 잊혀질 만하면 등장하는 우리 시대의 서글픈 풍속도가 됐다.

지하철과 같은 교통수단은 이 곳에서 저 곳으로 가는 데 이용하는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니다. 거기에는 문화가 있고 생생한 일상의 역사가 있다. 100여년 전 전차가 처음 경성에 등장했을 때, 전차는 길의 의미를 바꾸었고 근대성의 징표였다. 20~30년 전 '콩나물 시루'에 비유되던 시내버스는 산업화, 도시화의 상징이었다.

지금 지하철은 또 다른 의미로 우리 일상문화에 자리잡고 있다. 지하철로 연결되는 백화점, 수많은 상점들, 지하도 광고판들을 보면 지하철은 소비의 욕망을 연결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 일그러진 일부 젊은 세대의 의식이 극명하게 표출되는 장소도 되었다. 지하철을 타면 앉아있는 사람들의 태반은 휴대폰을 가지고 무언가에 몰두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결국엔 혼자인 독백의 공간인 셈이다. 지하철 의자에 앉아서 앞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 너무 머쓱한 탓에 휴대폰의 작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하철 막말녀 동영상이 최근 화제가 됐지만, 작년 연말에는 지하철 '막말 임신부'가 등장했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줄을 서라는 할아버지에게 욕설을 한 '막말20대'도 있었다. 그 어르신이 도리어 젊은이에게 "미안하다"며 자리를 뜬 일화로 기억되는 사건이다. 또 그 전에는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할머니에게 "나 곧 내리니까 그 때 앉아" 라고 높은 톤으로 말하자 할머니가 "말조심해, 그러는 거 아냐"라고 대꾸했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지하철 반말녀' 등 이 같은 사건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지하철에서 봉변을 당하는 쪽은 대부분 어르신들이다. 일부 몰지각한 청년들의 욕설과 막말은 늘 어르신들을 향한다. 이들 청년들의 마음 속에는 무료로 지하철을 타면서 무슨 잔소리냐는 생각이 깔려있는 듯하다. 그리고 자신들 내면에 깔려 있는 개인적 분노나 감정을 공공장소에서 그대로 드러낸다. 아마도 어르신들은 속으로 "이 놈의 세상, 도의(道義)가 무너졌구나" 생각할 것이다. 하기야 도의라는 말 자체는 우리 시대에서 오래 전 사라진 단어지만.

지하철은 또 젊은 세대 간 싸움이나 갈등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번 4호선 지하철 막말녀도 젊은 남성이 여성의 발을 밟은 게 발단이 됐다고 전해진다. 남자는 사과를 했는데 여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막말과 발차기를 주고받고 서로 머리털을 잡았다는 것인데 나로서는 정확한 정황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누구의 잘못을 가리기 전에 이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한 공간에서 같이 숨쉬고 있는 이들에겐 부끄러운 일이다. 인내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부 젊은이들의 이 같은 행태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사회학자 짐멜은 '둔감함'을 대도시 정신적 삶의 핵심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타인의 시선에 쉽게 반응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보존하는 태도다. 지하철 공간 안에서의 경험은 둔감함으로 포장되어 있는 듯하다. 속내 감추기와 반감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시선에 반응하지 않는 태도는 내향적으로 지하철 휴대폰 이용으로 이어지고, 외향적으로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보거나 관계없이 어르신들에게 무례와 폭력으로 나타난다. 젊은 세대에게 지하철은 독백의 공간이면서 무의식에 잠재된 욕망이 그대로 표출되는 곳이다. 그곳에는 남이 없고 오직 나만이 존재한다.

서울에 지하철이 개통된 지 약 40년이 지났다. 서울 지하철은 연간 20억명이 이용하는데, 이는 도쿄와 모스코바 다음으로 높은 이용률이다. 지하철은 이제 일부 청춘들에게 '나만의 공간'이라는 왜곡된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소음, 세속, 분노의 현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하철 막말녀 사건 소식을 들으면서 매일 타던 지하철이 더욱 낯설어졌다. 지하철이 젊은 세대나 어르신들에게 친숙한 곳이 됐으면 하는 바람, 필자 혼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주창윤 서울여대 방송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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