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역사적인 새 출발(신용사업 부문과 경제사업 부문 분리)이 불과 일주일 앞(3월 2일)으로 다가왔지만, 농협의 구태(舊態)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마땅히 갖춰야 할 기본 인프라(금융 전산망)는 잇단 전산사고로 갈수록 신뢰를 잃는가 하면, 수십 년간 정부 지원에 기대며 형성돼 온 무책임한 조직문화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부터 오전 7시13분까지 농협 전산망에 장애가 발생, 타행 공인인증서를 통한 금융업무가 차단됐다. 농협 측은 "2시간 만인 오전 9시께 전산망을 복구했다"고 밝혔지만, 이미 고질병으로 자리잡은 전산 장애에 대한 고객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농협 전산망 마비 현상은 작년 4월 금융권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사상 최악의 전산대란을 겪은 뒤에도 지난해 5월과 12월, 올해 1월 등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다음달 이후가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재 사용 중인 통합 농협 전산망은 다음달 1일 자정까지 운용한 후 5시간의 전산망 분리 작업을 거쳐 2일 오전 5시부터 농협은행과 농협생명보험, 농협손해보험 등으로 분산 운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처럼 전산망이 불안한 상태에서 더 복잡한 작업을 수행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농협 내부에서조차 "신경(信經)분리 초기 전산망이 사고를 일으킬까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농민을 볼모 삼아 매번 정부 지원만 바라는 조직문화도 비판 대상이다. 신경분리 날짜가 일찌감치 예고됐는데도, 농협은 아직까지 정부와 자본금 지원규모 및 방식을 두고 줄다리기 중이다. 국회가 작년 말 '(농협 재출범 지원을 위해) 연기금이 농업금융채권(농금채) 3조원어치를 인수하고 이에 따른 이자 전액을 5년간 보전하며 정부 소유의 주식현물 2조원 상당을 출자한다'는 법안까지 통과시켰지만 그 동안 정부와 조건을 놓고 줄다리기만 계속해 왔다. 지난 21일에야 '농금채 4조원+현물출자 1조원'으로 조건을 변경하는데 합의했지만 여전히 어떤 주식을 출자 받을지를 놓고 기싸움을 지속 중이다.
일각에선 정부측 출자 주체인 정책금융공사와 농협이 도로공사, 산은금융지주, 기업은행 주식을 출자하는데 합의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농협 관계자는 "법률안 부대조항에 '유동화가 가능한'이라는 전제가 달려 있어 산은지주와 기은 주식을 100% 받는 게 목표"라며 "최악의 경우에도 도로공사 주식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버티고 있다. 반면, 정책금융공사는 가급적 도로공사 주식을 많이 출자한다는 방침이어서 여전히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출자 없이 재출범할 경우, 농협은 최소 70억원대의 세금을 물어야 할 처지다. 다음달 1일로 끝나는 면세기간 이후에는 증권거래세와 등록면허세 등을 내야 하는데, 정부가 출자자산을 평가하는 데만 최소 3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농협 측은 "출자 논의 지연으로 과세되면 농협과 정부에 대한 조합원의 원성이 쏟아질 수 있다"며 이마저도 면세를 주장해 '지나친 억지 아니냐'는 비판까지 사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협이 과연 농민의 대표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갈수록 확산되는 분위기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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