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삼성전자 시스템LSI(비메모리) 반도체사업부 조성구(37) 책임연구원은 미국 비영리 재단인 테드의 글로벌 지식 공유 사이트(www.ted.com)를 보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에블린이라는 한 남성이 전신마비된 그래픽 아티스트 친구를 위해 눈동자 움직임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아이라이터’를 개발한 스토리를 접한 것. 그는 ‘명색이 나도 엔지니어인데, 장애인들에게 뭔가 해줄 수 없을까’란 고민에 빠졌다.
삼성전자 창의력개발연구소의 1호 프로젝트로 개발된 ‘안구마우스’는 이렇게 잉태됐다. 눈동자의 움직임만으로 PC커서를 움직여 인터넷 서핑은 물론 동영상 시청과 전자책 읽기 등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장애인용 특수장비다.
조 책임연구원이 안구마우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비싼 가격 때문이었다. 사실 안구마우스는 시중에 이미 나와 있었지만, 쓸만한 제품은 1,000만원이 넘었다.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해 10만원 이하로 만들 수는 없을까.’
그는 먼저 사내 동호회인 ‘테드삼성’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 물색에 나섰고 4명의 팀원을 포섭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됐다. 안구마우스 시제품 단계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해야 할 테스트에서부터 막혔다. “팀원들이 주로 일과 시간이 끝나고 저녁에 아이디어를 모아서 제품을 설계해야 하는데, 그 시간에 맞춰 줄 장애인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테스트 대상 장애인을 찾고서도 난관은 이어졌다. 안면 근육이 퇴화된 전신마비 환자들에게 무거운 안경 형태의 안구마우스를 착용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 것. 더구나 안구마우스가 필요한 환자들 중에는 호흡기 등 보조 의료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많았다. 조 책임연구원은 그래서 레고 블록으로 환자 인형을 만들고 안구마우스 무게를 줄이는 연구에 매진했다.
이들에게 뜻 밖의 희망을 던져준 곳은 회사였다. 때마침 삼성은 ‘창의경영’을 강조하며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원들에게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게 한 ‘창의개발연구소’ 운영계획(2011년11월)을 밝혔던 상황. 조 책임연구원의 안구마우스는 1호 프로젝트로 채택됐다.
덕분에 테스트 환자 섭외 등을 포함해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졌고 예산 등 문제도 쉽게 풀려갔다. 연구에만 몰두한 지 3개월, 마침내 22일 눈 깜빡임만으로도 인터넷 검색과 전자책 읽기, 동영상 시청, 오락 등이 가능한 ‘아이캔(eyecan)’ 마우스가 완성됐다. 아이캔은 일반 마우스처럼 좌우 클릭과 더블 클릭, 드래그 등의 기능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화상키보드 이용도 가능하다.
창의개발연구소는 애초 취지가 장애인을 돕기 위한 것인 만큼, 아이캔을 상업적 목적으로 상품화하지 않고 솔루션을 완전히 오픈했다. 단돈 5만원 정도면 제작할 수 있는 부품구입처, 매뉴얼, 소프트웨어를 온라인 사이트(www.samsungtomorrow.com)에 무료 공개했다. 조 연구원은 “앞으로도 장애인들의 IT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