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른손을 들까요? 왼손을 들까요?”
이석재 서울대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가 갑작스런 질문 하나를 던졌다. 1,800석 규모의 서울대 문화관 대강당을 가득 메운 중고교생들과 학부모, 인솔교사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 교수의 양 손을 주시했다.
이 교수가 “아”하는 고함과 함께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내 또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곳곳에서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교수는 잠시 침묵하더니 설명을 이어갔다.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물리적 결과로 나타나죠. 데카르트는 물질과 정신을 나눠 설명했지만, 자유의지 실현과 신체의 관계를 설명하지 못한 한계가 있죠.”
이 교수는 이어 “현대과학에서는 인간의 정신현상이 뇌에서 보내는 전기신호의 결과물임이 밝혀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인간의 도덕적 판단이 어디에서 오느냐는 논란”이라며 “인문학과 과학 사이에서 여러분이 고민할 문제고 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연을 듣는 학생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일보와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가 주최하고 포스코가 협찬한 ‘제19회 청소년을 위한 자연과학 공개강좌-과학과 인문학의 소통’ 행사 첫날인 23일 오후 ‘서양근대철학의 등장과 서양근대과학’ 강연의 한 장면이다.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는,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이어진 김정구 서울대 물리ㆍ천문학과 교수의 강연은 송창식의 노래 ‘우리는’을 듣는 것으로 시작됐다. ‘인류 인식의 혁명: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해, 상대성 이론의 정체는?’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김 교수는 “인간의 눈과 귀로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좁다”며 “세상을 바꾼 위대한 발견들은 보고 듣는 것을 넘어선 상상력에서 정답을 찾았다”고 강조했다.
“공상과학영화에서처럼 시간여행도 가능하냐”는 김남섭(17ㆍ서울 경기고2)군의 질문에 김 교수는 “빛보다 빠른 입자가 있으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런 입자는 아직까지 관측된 바 없다”며 “여러분 중에 빛보다 빠른 입자를 발견해 새로운 세상을 열 인재가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블랙홀을 주로 연구하는 우종학 서울대 물리ㆍ천문학부 교수는 ‘우주, 무한한 영감의 세계’라는 주제 강연에서 우주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문학과 예술 등에 영감을 준 신비로운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막 태어난 별들의 사진은 마치 요람 속의 아기 별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고 거대한 별의 장례식인 초신성은 나비가 날아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민화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언어학과 과학기술의 만남: 음성언어처리’라는 주제로 언어학에 과학을 접목한 음성언어처리 기술에 대해 설명했다. 정 교수는 “컴퓨터를 이용한 자연언어처리 및 음성언어처리를 연구하는 컴퓨터언어학도 그 뿌리를 따지면 음성학, 음운론 등 전통적인 언어학”이라며 융합학문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참가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강연 사이 5분 가량 주어진 질문 시간엔 학생들이 앞다퉈 손을 들었다. 첫 질문을 한 문상화(18ㆍ울산 외고2)군은 “이석재 교수님의 강연이 끝날 때는 가슴이 뛰기까지 했다”며 “다양한 종교 문화가 갈등 없이 조화를 이루는 한국에서 동서양과 인문학 자연과학을 조화시켜 큰 성과를 내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서대전고 학생 33명을 인솔해 온 수학교사 홍윤표(48)씨는 “딱딱하고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자연과학을 다양한 인문학 분야와 접목해 설명해줘 학생들이 더 흥미를 갖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공개강좌는 24일 오전까지 이어지며 이틀간 강연을 수강한 학생에게는 수강증을 수여한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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