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소공로 한국은행 동문 앞. 길만 건너면 조선호텔, 롯데백화점, OCI(옛 동양제철화학) 본사, 한진해운센터 등이 자리잡고 있고, 반경 500㎙ 이내에 덕수궁, 서울광장, 명동 등이 위치한 서울의 최고 중심부다. 그런데 조선호텔 앞 보도에는 행인이 넘쳐나는데, 한은 쪽은 늘 한가하다. 유심히 살펴보니 한은 동문 앞에서 프라자호텔 쪽으로 늘어선 빌딩들이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럽게 흉물로 방치돼 있다.
외벽은 칠이 벗겨진 지 오래고 1층 상가도 셔터문을 내린 곳이 많다. 간판이 너덜너덜 떨어져 나간데다 세입자가 들어서지 않은 듯 불 꺼진 층이 상당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근을 지나가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의아해한다. 일본인 스즈키 아야코(鈴木彩子ㆍ46ㆍ여)씨는 "이런 몫 좋은 곳에 위치한 빌딩들이 왜 비어있는지 모르겠다"며 "낡고 훼손된 건물을 방치해 두니까 거리가 무섭게만 느껴진다"고 했다.
서울 도심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꼽히는 소공동 112번지 일대가 10년 넘도록 방치되고 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잇따라 들어선 7개의 빌딩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서 도시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자칫 안전사고마저 우려된다.
서울 중구에 따르면 이 일대는 2000년대 초부터 개발이 추진돼 왔고, 2005년 북창동과 함께 제1종 지구단위계획 구역으로 결정되면서 개발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됐다. 당시 서울시가 도심 활성화를 위해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할 정도로 개발 가치를 인정 받은 곳이기도 하다. 시는 건물 높이를 최고 90㎙까지 완화하고 소공지하쇼핑센터의 지하통로로 연결하는 등 세부 지침도 마련했다.
문제는 땅 주인들이었다. 특별계획구역의 전체 부지는 5,327㎡(1,614평). 중견 건설사 삼환기업이 호텔 또는 주상복합건물로 개발하기 위해 1990년대부터 매입을 시도, 2000년대 초까지 옥외주차장과 빌딩 7개 가운데 4개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나머지 3개 빌딩에 대한 보상금액을 놓고 지주들과 이견이 커 개발이 제자리를 맴돌면서 도심의 대표적 노후지역으로 전락한 것이다. 특별계획구역에 포함된 3개 빌딩의 부지를 제외하곤 개발계획 수립이 어렵기 때문이다. 도심재개발사업의 경우 땅 주인 3분의 2(면적의 2분의 1)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 일대 공시지가(2011년 기준)는 3.3㎡당 3,993만원. 통상 공시지가에 비해 실거래가가 높은데다, 개발 가치가 높아질 것을 감안한 건물주들이 상당한 액수를 요구해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삼환기업 소유 4개 빌딩은 대부분 빈 사무실로 방치돼 있고, 나머지 빌딩도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임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이 지역 빌딩 1층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임차인은 "건물이 워낙 노후한데다 빈 사무실이 많아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찾는 손님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삼환기업 관계자는 "나머지 3개 빌딩의 매입이 쉽지 않은데다, 부동산 경기도 좋지 않아 현재는 개발을 중단한 상태"라며 "노후 건물의 안전과 미관관리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중구는 서울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에 노후 건물이 장기간 방치돼 있어 국격을 떨어뜨린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중구 관계자는 "상업지구로 바뀌었는데도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걱정스럽다"며 "개발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서울시와 함께 이 일대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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