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묘미는 결과의 불확정성에 있다. 스포츠는 정해진 경기규칙 내에서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다. 우리들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박빙의 경기를 통해 짜릿한 쾌감을 느끼며, 한편의 드라마처럼 역전하는 경기를 보면서 가슴 벅찬 감격을 맛보게 된다. 그리곤 최선을 다한 양 팀 선수에게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것이 진정한 스포츠의 승부세계이다. 반면에 승패가 갈라졌다고 해서 경기에서 선수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관중들은 갈채대신 야유를 보낼 것이며, 인위적인 요인에 의해 승패가 미리 정해졌다면 관중들은 당연히 그 경기를 외면하게 될 것이다. 조작된 경기는 이미 스포츠로서의 존재가치를 잃게 된다.
스포츠가치를 부정하고, 국내 프로스포츠시장을 고사시킬 수 있는 강력한 태풍이 지금 프로스포츠계를 강타하고 있다. 작년 프로 축구에 이어 프로 배구에서도 승부조작 문제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그 파문이 야구, 농구계로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소위 국내 메이저종목이라고 불리우는 4대 종목 전반에 걸쳐 의혹에 휩싸여 있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우리는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작금의 사태는 이미 예견된 측면이 있다. 프로스포츠가 성행하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물질만능주의와 한탕주의 풍조, 합법적이라고는 하나 사행심을 부추길 수 있는 스포츠토토사업 운영 그리고 인터넷의 강국이라는 국내 환경여건이 불법 도박사이트를 조장해왔다. 이를 입증하듯 현재 불법 온라인 베팅 사이트는 1,019개, 시장 규모는 약 12조7,4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근래에도 축구, 야구, 테니스, 스모 등 종목을 막론하고 불법도박과 관련된 승부조작 사건이 여러 국가에서 발생하는 것을 보아왔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해 본다면 지금의 승부조작 사건은 오히려 늦게 터진 감이 들 정도이다.
무엇보다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불편한 진실의 하나는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승부조작이라는 시한폭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너무나 안일하게 대응해왔다는 점이다. 게다가 승부조작의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조차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입 다물고 귀 막기에 급급해 왔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와 같은 불행한 사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관계자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우선 강력한 처벌과 함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승부조작은 엄연한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승부조작에 관여한 선수들에게는 엄하게 그 죄를 물어야 한다. 또한 소속팀에서 사전에 승부조작 사실을 알고도 방치했다면 팀 관계자에게도 연대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제도적인 보완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승부조작 방지를 위한 전담기구를 마련하고, 브로커의 제의를 받거나 주변의 승부조작 사실을 인지하거나 의심이 들 때 즉각 신고 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신고보상제도와 함께 신고자의 신분 및 비밀을 보장하는 등 다각적인 조치를 통해 브로커의 접근을 원천 봉쇄해야 할 것이다.
장기적인 대책으로는 선수들의 윤리의식이 확립되도록 윤리교육과 직업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우선 프로선수들에게 운동선수들은 일반인이 아닌 공인이라는 점, 어린 학생선수들에게 프로선수는 롤 모델이 된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시켜 선수로서 자긍심 갖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프로선수에게 맞는 직업윤리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일부 선수들의 부정행위로 인해 프로선수들의 일터요, 생활의 터전인 프로스포츠 판을 깨지 않도록 철저한 직업윤리 교육과 함께 직업선수로서 관중들에게 프로다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직업의식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국민들은 프로스포츠가 이번 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한층 성숙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손석정 남서울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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