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웬만한 약속은 다 인사동에서 잡았더랬다. '안국역 몇 번 출구 앞'만큼 설명에 뒤끝이 남지 않는 장소도 없었더랬다. 문인들이 촌스러워 그곳에 모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천만에! 우리들도 포크로 돌돌 말아 먹는 파스타에 피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 썰어 먹는 거 즐길 줄 아는데 말이다.
그렇게 영원할 줄 알았던 우리들 만남의 광장 인사동이 어느 날부터인지 우리들의 다이어리에서 사라졌다. 그곳이 아니어도 차 한 잔 시켜놓고 문학이냐 죽음이냐를 논할 수 있는 밀실 같은 카페가 여기저기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곳이 아니어도 술 한 병 시켜놓고 사랑이냐 사람이냐를 고민하게 만드는 암실 같은 술집이 곳곳에 널렸기 때문이다.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인사동을 찾았다. 뵙기로 한 어르신과 마주 앉아 점심으로 정식 메뉴를 시키는데 우리를 제외하고 모두가 일본인 관광객들이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시끄러운 와중에도 특유의 간드러지는 웃음으로 뚝배기에 담긴 계란찜이며 비지찌개며 숭늉을 찍어대는 저들의 카메라에 대체 어떤 사진들이 담겨 있을지 궁금해진 나.
그렇다고 카메라를 뺏어 넘겨볼 수는 없는 노릇, 해서 뭘 찍었을까 곰곰 인사동 거리를 그려보는데 웬걸! 왜 난 내 구두 굽을 몇 번이나 잡아먹은, 그래서 길 가다 말고 맨발로 서서 내 구두를 무처럼 뽑아서 들게 만들던 보도블록 틈바구니가 젤로 먼저 생각났던 걸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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