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든 좋든 20여일 후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돼 양국의 관세장벽이 허물어진다. 우리 기업들이 관세나 각종 규제 같은 보호막 없이 무한경쟁에 노출돼 오로지 제품의 경쟁력 만으로 진검 승부를 펼쳐야 한다는 뜻이다. 수출 대기업은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3%를 점하는 거대시장에서 한층 강화된 가격 경쟁력을 토대로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되지만, 국내 시장은 미국 기업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전문가들이 "농ㆍ축산업, 자영업, 중소기업 등 취약계층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우선 한미 FTA가 발효되면 양국의 모든 상품에 붙는 관세는 원칙적으로 철폐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는 7,218개(전체의 85.6%), 미국은 6,178개(87.6%) 상품에 대한 관세를 발효와 동시에 없앤다. 자동차 부품에 적용되던 2.5~4%의 미국 관세와 최대 8%인 한국 관세, 그리고 섬유제품에 최대 30% 넘게 매겨지던 양국 관세도 즉시 폐지된다. 미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15만원 이상 구매한 물품에 적용되던 관세도 없어진다.
다만, 갑작스러운 관세 폐지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 상품에 대해선 철폐기간을 달리 잡았다. 승용차의 경우 미국은 현재 2.5%인 관세를 4년 후 없애고, 한국은 8%인 관세를 일단 4%로 내리고 4년 후 완전 철폐하는 식이다.
쌀과 쌀 관련 식품, 콩, 감자, 천연 꿀 등은 철폐 대상에서 빠졌다. 관세를 없앨 경우 우리 농민들에게 심각한 타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쇠고기(15년), 돼지고기(10년)도 관세 철폐기간을 길게 설정했다. 그렇다고 해도 주스용 냉동원액(관세 50%)을 비롯해 국내 농산물과 경쟁 관계인 체리(24%), 건포도(21%), 아몬드(8%) 등의 관세가 폐지돼 우리 농가에 닥칠 피해는 불가피하다.
서비스 시장도 대폭 개방된다. 금융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 기업의 진출을 차별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공교육ㆍ의료ㆍ수도ㆍ전기ㆍ가스 등 공공 분야에 대한 정부 규제는 예외다. 법률, 회계, 세무 분야는 단계적으로 개방이 추진된다. 이미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다국적 로펌 '맥더못 윌 앤드 에머리'가 서울사무소 개설을 발표하는 등 7~8개 미국 로펌이 국내 진출을 준비 중이다. 설계, 수의 분야의 자격증을 상호 인정하는 방안도 향후 논의된다.
양국 정부가 기업 활동을 규제하거나 타국 기업을 차별해 민간 투자자가 손해를 보면 상대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도 시행된다. 의약품의 경우 신약 개발업체가 특허권 침해를 주장하면 복제약 허가절차를 중지시키는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도입되고,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권 관련 법과 다자 환경협약상 의무도 준수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관세철폐 혜택을 보려면 수출 상품이 FTA 대상 물품인지 확인해 한국산이라는 원산지 증명을 해야 한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은 일단 한국산으로 인정받지 못해 관세가 유지되지만, 향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면세혜택 적용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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