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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업 실패 연구/ <중> 뿌리를 잃었다: 도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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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업 실패 연구/ <중> 뿌리를 잃었다: 도요타

입력
2012.02.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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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車 1위' 집착에 품질경영·조직관리 흔들

도요타는 일본제조업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자동차 종주국인 미국이 거꾸로 배우고 간 곳이 도요타였다. 2차 대전에서 미국에 패망한 일본인들은 미국의 콧대를 꺾은 도요타를 보면서, 위안을 삼았을 지도 모른다. 도요타는 2008년 판매물량에서마저 미국 GM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1년. 도요타는 세계 4위로 추락했다. 앞서 발생한 대규모 리콜사태 후유증에다 대지진, 태국홍수, 엔고 등이 겹친 결과다. 아키오 일본 도요타 사장은 절치부심 "올해 세계 시장에서 지난해보다 21% 늘어난 958만대의 자동차를 팔겠다"며 세계 1위 복귀를 다짐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도요타의 권좌복귀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메이커들이 강해진 탓도 있지만, 도요타도 더 이상 예전의 도요타가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도요타 왕국'이 흔들리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자신 만의 색깔을 잃어버린 것을 꼽는다.

사실 도요타의 성공스토리 안에는 ▦카이젠(개선을 뜻하는 일본어)으로 대표되는 도요타생산시스템(TPS)과 ▦모노즈쿠리(혼을 담아 최고 제품을 만든다는 일본어)로 압축되는 품질경영이 자리잡고 있었다. 시스템과 경영방식이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도요타의 신화는 만들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경제의 장기침체와 엔고, 여기에 현대차 같은 경쟁사들의 추격 압박을 받으면서 도요타는 마음이 급해졌다. 원가를 절감해야 한다는 강박감 속에 도요타는 과거 일본 회사들로부터만 공급 받던 부품을 좀 더 싼 다른 나라 제품으로 대체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품질관리에 애를 먹기 시작했다.

박기임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도요타는 협력업체들과 함께 도요타시(市)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설계, 생산, 교육까지 유기적으로 공조했다. 하지만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뛰어난 품질경영과 조직관리 등 도요타의 뿌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0년 대량 리콜 사태를 가져왔던 '렉서스 ES350'의 가속 페달 생산업체는 일본 부품업체가 아닌 미국 CTS사였는데, 도요타는 개별 부품 별 테스트만 진행하고 조립된 상태에서 테스트는 하지 않았다며 '설계 결함'을 시인했다.

또 설계 기간을 무리하게 단축(18개월→12개월)하고, 부품을 대량 구매해 여러 차종이 같이 쓰는 등 비용 줄이기에만 집착하다 보니 단 한 개의 부품에 이상이 생겨도 그 여파는 커질 수밖에 없다.

세계 1위 자리에 집착한 나머지 도요타의 정체성을 잃어 버린 것도 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아보 테츠오 도쿄대 명예교수는 "도요타가 렉서스 같은 고급차 시장과 대중차 시장 중 어디를 공략할 지 혼란스러워 하는 와중에, 현대차 등 후발 주자를 지나치게 의식해 품질 경쟁력을 과소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사실 도요타는 경쟁 회사보다 고비용 생산 구조를 지닌 채 미국, 유럽의 선진 시장을 무대로 성장했다. 그러나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도요타는 중국, 인도 등 신흥국 중심의 중저가 제품 공략을 추진했고, 현대차 등 이들 시장에 먼저 진출한 경쟁 회사와 원가 경쟁을 펼치다 보니 큰 출혈이 발생했다.

세계 1위의 자만심에 빠져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는 점도 뼈아팠다. 실제 2004년 미국에서 렉서스와 캠리에 대한 불만이 접수되고, 2007년부터 10여 회 리콜을 실시했음에도 도요타는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채 부품 업체에게 책임을 돌렸다.

김양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의 지속 성장은 원가 절감이 아닌 가치 창출에 있다"며 "원가절감 대 품질유지, 해외 공장 신설 대 국내 생산 시설 확대 등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맹목적으로 유행을 좇을 것이 아니라 각 기업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냉정히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협찬: SK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성공 과신해 무리하게 확장…복잡성 관리 실패하며 리콜 대수 급증"

일본전문가인 김현철(사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도요타를 비롯해 소니, 파나소닉, 닌텐도 등 일본 기업의 실패 요인으로 '복잡성(불확실성) 관리 실패'를 꼽았다. 이들 업체들이 성공을 과신해 제품, 생산시설 등을 무분별하게 확장하면서 복잡성이 증폭됐고 결국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는 "도요타는 2000년대까지 생산량을 400만대 수준으로 유지했으나 2008년부터 800만대로 급격히 늘렸고 관리역량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리콜 대수가 결국 1년 생산량만큼 늘어나게 된 것. 여기에 일본 기업의 리더십 부재도 실패의 주 요인이 됐다.

그는 또 일본 정부가 기업을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가 연금이나 노인 일자리 등을 모두 기업에 떠넘기면서 기업의 부담은 커졌다는 것. 포퓰리즘에 기반한 일본 정부의 무능함이 결국 기업들의 신흥국 진출의 원인이 됐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일본기업의 실패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한국 재벌들이 계열사를 확장하면서 골목상권까지 진출하고 있는데 사실 복잡성 관리 측면에서 보면 맞지 않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도 고용 등 문제를 기업에 떠넘기면서 부담을 지우게 되고, 결국 일본이 겪는 어려움을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기업의 침체는 장기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일본 경제 자체가 성숙화 되어있는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 그는 "일본에서도 이를 해결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결론은 현상을 유지하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일본 자체가 극적인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기업 경영진들 역시 변화를 추구할 의욕도 권한도 없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일본 기업들이 구조조정 등을 통한 혁신을 원하지 않는다"며 "세계 3위 경제 대국인 만큼 급격히 망한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현상 유지라는 선택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저서 을 일본에서 먼저 출판해 도요타에서 대량 구매했으며, 이달 초에는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 '일본 기업의 실패 원인'에 대한 강의를 할 정도로 일본 경영 분석에 손꼽히는 전문가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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