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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이분법의 매력, 이분법을 사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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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이분법의 매력, 이분법을 사랑하는 이유

입력
2012.02.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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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분법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세상을 둘로 나누어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성실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없는 사람으로 세상 사람들을 갈라 보면, 이 세상이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이를테면 돈이 많고 성실하며 착한 사람이 돈이 없고 게으르며 나쁜 사람보다, 대개의 경우 보다 매력적으로 보인다. 세상에 이분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가 가진 매력의 정체를 헤아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세상을 둘로 나누어 보는 것은 세상을 좀 더 뚜렷하게 보기 위한 습관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이분법은 자주 공격과 비난을 받아 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이분법이 소위 중간 지대가 가지고 있는 생생한 진실을 외면한다는 비판이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이쪽에도 그리고 저쪽에도 속하지 않는 애매한 영역에 들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히 착하고 동시에 적당히 나쁜 법이다. 세상에 순수한 흑색과 백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삶의 무대는 항상 회색이다. 그런데 이분법, 그러니까 흑백논리는 세상을 검은 색과 흰 색으로 나누어 봄으로써 회색 지대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비난은 다소 허망하다고 믿는다. 우리의 상식적 판단은 회색을 흑색이나 백색으로 착각하거나 일부러 집요하게 흑백으로 환원해서 생각할 만큼 일관되게 멍청하지는 않다.

이분법에 대한 보다 중요한 비판은 그것이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한번 심각하게 고민해볼만 하다. 특히 우리의 이론적 확신, 가치관 혹은 이해 관계가 개입되어 있는 경우 이분법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종종 문제를 키우고 다툼만을 가져오기 일쑤이다. 옳음과 그름이 섞이고 이익과 손해가 갈라지는 지점으로 오면 이분법의 당사자들은 자신의 태도를 편협하게 고수함으로써 서로를 비난하고 폭력적으로 억압하려 한다.

이때 이분법 자체를 폐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싸우는 두 사람에게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고 이 문제를 지적한 그쪽도 옳다고 말한 황희 정승의 예가 대표적이다. 전통적인 서양 철학이 주관과 객관, 정신과 육체의 분리라는 틀 안에 머물러 있다는 한가로운 비판도 그 중 하나이다. 자연과 인간이 본래 따로 떨어져 있지 않으니 인간은 자연 속에서 그 부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적인 주장도 때로는 공허한 개념적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나쁜 이분법, 불필요한 이분법, 억압적인 이분법은 폐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이분법에 단순히 반대하는 태도로서가 아니라 여기에 개입되어 있는 폭력적인 사유의 구도를 정밀하게 분석함에 의해서 느릿느릿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분법이 작동하지 않는 논쟁의 체계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선거를 앞두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소위 복지 담론이 그러하다. 복지는 이제 어떠한 형태의 반대도 허락하지 않는 절대선의 자리에까지 올라왔다.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찬반이 가능하지 않으니, 복지에 대한 수다한 정책 제안들은 수사학적 완성도의 측면에서만 서로 경쟁하고 있는 양상이다.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생산적이려면 하루라도 빨리 이 안에 이분법이 다시 만들어져서 이쪽의 복지와 저쪽의 복지, 동쪽의 복지와 서쪽의 복지가 입장을 달리하여 ‘의견의 차이’를 전제하는 열렬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는 이분법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난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분법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나는 이분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끼리의 설익은 화해와 이심전심보다는, 흑백논리로 똘똘 뭉친 사람들 사이의 열렬한 토론과 논쟁을 더 좋아한다. 입장과 관점의 차이는 우리의 적극적인 소통에 의해서 확인되고 조정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김수영ㆍ로도스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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