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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한국테니스선수권 역대 최연소 본선행 14세 이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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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한국테니스선수권 역대 최연소 본선행 14세 이덕희

입력
2012.02.19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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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이 내 귀에 입을 대고 큰소리로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청각장애 3등급 장애인이다. 태어날 때부터 내게 세상은 고요한 바다와 같았다. 하지만 소리는 듣지 못해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내가 어눌하지만 말을 곧잘 한다고 말한다. 그건 교육을 통해서 얻어진 게 아니고 엄마, 아빠의 입 모양을 보고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다. 테니스 경기를 할 때도 공 소리는 물론, 관중들의 환호소리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온통 침묵뿐인 주위환경. 그런 분위기에서 어느덧 나는 내 자신에게 말을 거는 법을 배웠다.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내가 나에게 말한다. "조용하니까 좋잖아? 다른데 신경 쓸 필요 없이 오직 경기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그럼 그걸로 됐어." 그런 내가 누구냐고?

충북 제천동중학교 1학년 이덕희(14)가 제주 서귀포 테니스 코트에서 열리고 있는 제67회 한국 테니스선수권대회 역사를 갈아치우고 있다. 장난기 가득한 앳된 얼굴의 이덕희가 자력으로 단식 본선에 오른 것이다. 한국선수권대회는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인 만큼 대학ㆍ실업팀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자존심을 걸고 대거 참가한다. 따라서 이덕희는 예선통과마저 불투명했는데 본선 1회전에 합류한 것이다.

이덕희에 앞서 현 국가대표 에이스 임용규(한솔테크닉스)가 2005년 안동중 2학년때 본선에 오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덕희는 임용규보다 1년 빨리 최연소 본선 진출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덕희를 지도하고 있는 한동준 코치는 "전혀 예상 밖의 결과다. 사실 예선통과도 장담하지 못했다"며 놀라워했다. 한 코치는 "(이)덕희가 지난달 호주 뉴캐슬오픈대회 4강 진출 이후 자신감이 많이 올랐으나, 기량 향상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5개월 가량 지도했는데 덕희에게 청각장애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테니스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타구 소리를 듣고 공의 방향을 알아채야 하지만 덕희는 감각적으로 미리 읽어낸다. 또 스타 플레이어들의 경기 장면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고 강조했다.

어머니 박미자씨는 "덕희가 4,5세때 청주성심학교 유치부에 다닐 때부터 운동에 소질을 보였다. 하지만 청각장애 아들이 비장애인과 함께 하는 단체종목은 무리인 것 같아 개인종목으로 눈길을 돌렸다. 7세 무렵 집 근처 테니스코트가 있어 레슨을 시켰다. 다행히 초등학교(신백)에도 테니스부가 있어 운동을 계속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테니스 라켓은 이후 이덕희의 유일한 친구이자 버팀목이 되었고 초등부 랭킹1위는 그의 몫이었다. 특히 2010년 6학년때는 미국 에디허(Eddie Herr)국제주니어대회 12세부 단식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에디허 대회는 로저 페더러 등 세계적 스타들이 주니어때 거쳐가는 대회로 등용문 같은 코스다.

이덕희는 지난해 같은 대회 14세부에선 단식 4강에 올랐다. 또 8월 체코에서 열린 14세 이하 주니어 국가 대항전인 월드테니스대회에서도 홍성찬(15), 강구건(15) 등과 함께 사상처음으로 한국팀의 우승을 합작했다.

때마침 든든한 후원자도 만났다. KDB산업은행과 3년간 후원계약을 맺은 것. 아버지 이상진씨는 "덕희가 테니스 선수로서 투어활동 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장애의 몸이지만 한국을 빛낼 수 있는 대표선수로서 성장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한 대한테니스협회 전영대 부회장은 "반 박자 빠른 포핸드가 일품이다. 중학교 1학년으로 채 여물지 않은 체격이지만 스피드를 살려 힘이 실린 스트로크와 각도가 큰 백핸드가 오히려 실업 선수들을 압도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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