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초만해도 사공일 무역협회(무협) 회장의 후임은 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유력했다. 경합하던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은 뜻을 접었고, 이 전 장관도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역할이 주어지면)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할 만큼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상황은 급반전됐다.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귀국했던 한덕수 전 주미대사가 16일 돌연 사의를 밝히면서, '무협회장 한덕수'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불과 전날까지도 한 전 대사는 거취변동의 낌새도 없었던 상황. 무협은 17일 회장단 회의를 열어 한 전 대사를 만장일치로 새 회장에 추대했다.
한 전 대사의 무협행은 15일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를 통해 결정됐다는 후문이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한 전 대사에게 무협회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재외공관장을, 더구나 가장 중요한 주미대사를 마치 경질하듯 갑작스럽게 물러나게 하는 건 상당히 무리한 인사라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새 회장추대를 위한 무협 회장단 회의가 17일 소집돼 있던 터라 서둘러 사의표명이 불가피했다는 게 정부 쪽 설명이다. 한 소식통은 "이 대통령이 진작부터 한 전 대사를 무협회장으로 생각했다면 일찌감치 사의를 표명했을 것"이라면서 "하루 이틀 새 상황이 급반전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한 전 대사를 무협회장으로 보내야겠다고 결심한 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다.
한미 FTA는 정식 발효를 코 앞에 뒀음에도, 올 총선과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는 상황. 야당은 '집권 후 폐기(또는 재재협상)'까지 말할 만큼, 공세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야당의 파상공격에 맞서려면 정부가 나서는 것 보다 FTA의 당사자인 경제계 그 중에서도 무역업계가 직접 나서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으며, 이런 중대 미션을 수행하려면 다소 중량감이 떨어지는 이 전 장관보다는 한 전 대사 같은 '거물'이 적합하다고 막판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무협회장에게 이제 'FTA 전사(戰士)'미션이 주어진 것 같다"고 평했다.
사실 한 전 대사는 '뼛속까지 개방론자'란 평가답게 FTA와는 인연이 깊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던 2006년 경제부총리로 미국과 FTA 협상개시부터 깊숙이 관여했다. 지난 정권에서 부총리와 총리까지 지낸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대사로 임명된 것 또한 한미 FTA협상이 일차적 이유였는데, 실제로 협상 타결과 의회비준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다.
FTA 측면에서 보면 사실 한 전 대사 이상의 적임자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중소무역업체 보호와 수출지원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한 무협이 FTA에만 '올인'하는 것이 맞냐는 지적도 나온다. 더구나 FTA방어를 위해선 앞으로 야당과 각을 세우게 될 텐데, "괜히 정부를 대리해서 정쟁에 휘말리게 됐다"는 걱정도 무협 주변에선 흘러나오고 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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